美 대기업들, 유럽기업 인수 후 본사는 '법인세 절반' 英으로 이전
조만간 규제법안 발의하기로
화이자·피아트크라이슬러 등 월그린은 주주들이 이전 요구
[ 이심기 기자 ] 미국 의회가 세금 회피를 목적으로 한 인수합병(M&A)에 제동을 걸기로 했다. 미국의 대표적 제약업체인 화이자를 비롯, 줄잡아 20여개 대기업이 유럽 기업을 인수한 뒤 통합법인을 영국 등지에 설립하는 방식으로 미국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잇따르자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20여개 대기업, 최근 2년간 미국 탈출
론 와이든 미 상원(민주당) 의원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외국에 통합법인을 세우려는 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는 미국 제약회사인 화이자가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를 인수하려는 시도를 예로 들며 최근 2년간 세금을 줄이기 위해 미국을 벗어난 기업만 20여곳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칼 레빈 상원의원도 미국 기업이 외국 기업을 인수한 뒤 외국에 통합 법인을 세우는 것을 막는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화이자는 지난 1월 아스트라제네카로부터 인수 제안을 거절당한 이후 최근 제안가를 630억파운드(약 1060억달러)까지 올렸으며 인수에 성공할 경우 본사를 뉴욕에서 영국으로 옮긴다는 방침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화이자가 본사 이전을 통해 세금을 연간 10억달러 이상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의 피아트와 미국의 크라이슬러가 합병해 탄생한 피아트크라이슬러도 각자의 본거지인 로마와 디트로이트를 떠나 본사를 영국으로 옮길 계획이다. 미국 약국 체인인 월그린도 주주들의 압력에 따라 본사를 영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골드만삭스 등 주요 주주들이 영국 약국 체인인 얼라이언스 부츠를 인수한 뒤 영국에 통합법인을 세울 것을 회사 경영진에 제안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 대형 바나나 생산업체인 치키타도 아일랜드 과일업체 파이프스를 합병한 뒤 본사를 아일랜드로 옮길 계획이다.
미국의 광고회사 옴니콤과 프랑스 퍼블리시스 합병 협상이 실패로 끝난 것도 세금문제가 원인이었다. 네덜란드에 지주사를 두는 대신 본사를 세율이 낮은 영국에 두려 했으나 복잡한 기업구조와 네덜란드 당국의 규제 문제가 얽혀 합병이 무산됐다는 것.
○미국 법인세율, 영국의 두 배 수준
민주당은 자국 기업들이 연구개발(R&D) 혜택과 일자리 보조금 등 각종 특혜를 누리면서 정작 세금은 내려 하지 않는다며 본사 이전 움직임을 성토하고 있다.
와이든 의원은 “M&A를 통해 본사를 옮김으로써 세제상의 이득을 볼 수 있는 제도적 허점을 막기 위해 소급입법도 불사할 것”이라며 “기업들도 미국을 버림으로써 이득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 정치권의 규제 움직임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FT는 공화당이 민주당의 법안에 동의한다는 신호가 없다며 단기간 내에 입법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과도한 세율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의 법인세율은 연방정부의 35%와 각 주정부가 정한 세율을 더할 경우 평균 39.1%에 이른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 영국은 연간 이익이 30만파운드를 넘는 기업을 대상으로 2011년부터 매년 법인세율을 낮춰 21%로 미국의 약 절반에 불과하다. 아일랜드의 경우 법인세율이 12.5%로 미국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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