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 과시성 줄고 필수소비는 제자리로
야외활동 자제…술집 '텅텅' 골프장 예약 20% 취소
자녀들 교육·선물엔 지갑 열어
[ 정인설 / 이미아 / 이현동 기자 ]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국내 소비 패턴이 나뉘고 있다.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생활형 소비는 점차 정상을 찾아가고 있다. 요란한 행사에 나가기는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임이나 여행은 예정대로 하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분위기다.
이달 말 부인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날 예정인 김모씨(58)가 대표적인 예다. 김씨는 세월호 사고 이후 국내에 있으면 괜히 우울해지고 활력이 떨어져 미국행을 결정했다. 김씨는 “한 달 정도 휴식을 겸해 자녀들에게 다녀오면 주변 분위기도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5일 김포공항에서 만난 전업주부인 박모씨(56)도 “너무 슬픔에 잠겨 있다 보니 몸이 더 나빠졌다”며 “친구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라고 했다.
이 같은 ‘기분 전환족’이 늘면서 국제선은 세월호 사고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뒤 24일까지 아시아나항공의 국제선 탑승률은 82.1%였다. 77.1%였던 작년 같은 기간 탑승률보다 오히려 5%포인트 높았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세월호 사고 이후 학교 수학여행과 공무원 단체 출장은 취소하지만 꼭 가야 하는 해외 출장이나 개인적인 여행은 계획대로 가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쇼크’로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커지면서 자녀들을 위해선 돈을 적극 쓰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15개월짜리 딸을 둔 주부 최모씨(36)는 최근 해외 직접 구매로 수백만원을 들여 소파와 아기 침대를 샀다. 최씨는 “사건이 터진 뒤 딸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먹고 마시는 소비는 덜 하게 돼도 자녀를 위해서라면 돈을 더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온라인 특별판매로 진행되고 있는 어린이날 선물은 나오는 족족 매진되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자동차 변신 로봇인 ‘또봇 시리즈’는 어린이날 전에 온라인 특가로 살 수 없을 정도다. 이 때문에 G마켓과 옥션 매출액은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1년 전과 비교해 거의 변화가 없었다.
세월호 사고의 직격탄을 맞았던 오프라인 쇼핑도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세월호 침몰 직후인 16일부터 20일까지 현대백화점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 줄었지만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오히려 0.2% 늘었다.
이번 참사 이후 일별 매출이 작년보다 10% 이상 빠졌던 TV홈쇼핑 업체들도 지난 23일부터 사건 이전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김상수 롯데백화점 마케팅 전략팀장은 “세월호 침몰 직후에는 다들 쇼핑을 꺼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비자들이 조금씩 지갑을 열고 있다”고 분석했다. 휴대폰을 교체하는 번호이동 건수나 신차 판매량도 작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주말까지 야외활동을 자제하다 이번 주말부터는 골프나 필수적인 모임에 나가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세월호 영향권 안에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공무원들은 ‘요즘 같은 때에 찍히면 끝’이라는 생각에 두문불출하고 회사원들조차 퇴근 뒤 삼삼오오 모이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주점을 운영 중인 양모 사장은 “세월호 사고 이후 식당은 20%, 주점은 50% 이상 손님이 줄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수도권 주요 골프장도 주말인 26일과 27일 예약 취소율이 예년의 세 배 이상인 20~30%대였다.
급식업체인 삼성웰스토리 관계자는 “5월에 몰려 있던 각종 행사를 대부분 취소하면서 급식 업체뿐 아니라 이벤트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며 “최소한 5월까지는 작년 수준으로 매출이 살아나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인설/이미아/이현동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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