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지식사회부 기자 induetime@hankyung.com
[ 박재민 기자 ] 기다리던 아이 소식이 도착했다. 싸늘한 주검이 됐다는 말에 부모는 무너졌다. ‘2009.8.15.’ 목걸이에 새겨진 날짜가 신원 확인 단서가 될 줄은 몰랐다.
아빠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같은 말을 되뇐다. “우리 애가 아닐거야.” 엄마는 신원확인소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곡소리를 안으로 삼킨다. 입을 앙다물고 곧 터져 나올 듯한 비명을 참는다. 옆에 선 친척들은 오열하는 엄마를 위로할 수 없다. 한 명은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슬픔에 동참한다. 나머지 둘은 애써 천장을 바라본다.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집어넣는다. 팽목항행 차량이 도착하자 가족은 허겁지겁 떠났다. 지난 21일 밤 9시45분, 전남 진도실내체육관 ‘GATE3’ 앞 신원확인소 모습은 이랬다.
체육관 앞 단상에 서서 왼편 중간 쪽을 바라봤다. 빈 공간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빈자리는 비보(悲報)다. 팽목항으로 시신 확인하러 황망히 떠난 부모들 뒤에는 내팽개쳐진 이불과 놓고 간 세면도구, 벗어놓은 슬리퍼가 남았다.
이날 밤 진도 팽목항에 들어온 시신은 총 23구. 실종자 가족들이 상황판에 몰려들었다. 81, 82, 83…. 확인된 사망자는 계속 늘었다. 어떤 이는 “우리 애는 아니야”라며 안도했고 누구는 “치아가 저랬나?”라며 기억을 더듬었다. 한 학부모가 조급하게 달려왔다. 사망자 정보를 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설마 했는데, 우리 애가….” 악을 쓰며 우는 그를 말 없이 쳐다봤다.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온 딸을 찾은 한 어머니는 “막상 찾았는데 가슴이 더 저민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못 찾으면 애통하고 찾아도 슬펐다. 이런 슬픈 모습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어제도 그랬고, 또 내일의 모습이기도 하다.
진도는 남은 가족들의 눈물로 젖어 있다. 통곡도 악다구니도 이제는 일상이다. 눈물에 젖은 팽목항을 바라보면서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선장과 직원들, 실종된 안전의식, 정부의 잇단 헛발질, 도를 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악성글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로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박재민 지식사회부 기자 induetim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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