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태풍' 앞둔 中企 현장르포
[ 김낙훈 기자 ]
인천 남동산업단지의 동양다이캐스팅(사장 오경택). 가전·자동차부품을 만드는 이 회사는 수출 주문이 늘면서 근로자가 최근 4년 새 70명에서 100명으로 늘어났다. 그래도 거의 매일 잔업을 하고 주말에는 심심찮게 특근으로 이어진다. 이 회사가 수출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신기술을 개발한 덕분이다.
오경택 사장(60)은 “생산 제품 중 가스압력조절기(레귤레이터)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상용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 사장은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어서다.
근로시간단축법안이 중소업계에 ‘태풍의 눈’으로 다가오고 있다. 새누리당이 주당 52시간에 추가 잔업을 최대 8시간으로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이달 중 처리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잔업을 포함해 68시간까지 허용하고 있다.
동양다이캐스팅처럼 잔업이 많은 기업에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다. 오 사장은 “수출물량을 제때 선적하기 위해 우리는 잔업을 자주 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오 사장뿐 아니라 상당수 중소기업인은 한마디로 이번 법안 개정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당장 중소기업인들은 근로시간을 줄여 고용률을 높이겠다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입법 취지가 “전형적 탁상공론”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경기 화성의 한 주물업체 사장은 “도대체 생산직 근로자를 1년 내내 구하려고 해도 단 한 명을 찾기도 어려운 현실인데 근로시간 줄인다고 어떻게 고용률이 높아지겠느냐”고 비판했다.
실질 소득 감소로 인한 노사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일진도금단지 내 대한지엠피의 신규식 사장(63)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실질 임금이 20~30% 줄면 근로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고 전국의 중소기업 현장은 노사분규의 홍역을 치를 것”이라고 걱정했다.
남동산업단지의 15년차 근로자인 J씨는 주당 68시간 근무시 한 달에 약 300만원을 받는다. 그 돈으로 부모님과 아내, 두 명의 자녀 등 여섯 식구가 생활한다. 빠듯하지만 그런대로 생활을 꾸려간다. 하지만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급여는 30%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졸지에 300만원에서 210만원 선(주 52시간의 경우)으로 깎이는 것이다. J씨는 “그 돈으로는 도저히 생활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산업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이탈 가능성도 한층 높아질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정해진 한국 체류 기간에 기업이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거주하면서 최대한 많은 돈을 모아 귀국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인천의 단조업체에서 일하는 필리핀 근로자 S씨는 많은 잔업으로 월 240만원가량 받지만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180만원 선으로 줄게 된다. 근로시간 단축이 하나도 반가울 게 없다. 반월산업단지 내 한 기업인은 “근로시간이 줄게 되면 외국인 근로자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근로시간에 관계없이 일을 시키는 불법사업장으로 대거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며 “대다수 중소기업인은 처벌을 감수하고라도 잔업을 더 시킬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충남 당진의 한 건자재업체 사장은 “업종이나 기업규모별 유예기간 차등적용은 필요 없고 현행대로 68시간까지 기업이 자율 결정토록 하는 게 최선”이라며 “중소기업을 돕지는 못할망정 제발 평지풍파는 일으키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인천=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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