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일어난 명예혁명…제도적으로 재산권 보장
기업가정신 촉발시켜
경쟁 제한하는 길드 대신 자유로운 선대제도 발달
투자·혁신 활발히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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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사람들이 빈곤과 질병의 질곡에서 벗어나 오늘날과 같은 삶의 질 개선을 가져온 획기적인 계기는 단연 산업혁명이다. 생산과 소득 급증과 기술 진보, 소비패턴의 다양화와 같은 현상이 처음 나타난 것도 산업혁명 이후이다. 면직공업과 철강산업으로 대표되는 산업혁명의 특징으로는 코크스를 이용한 저렴한 철강 생산, 증기기관으로 인한 동력의 혁명, 방적기계 개발에 따른 면직물의 대량 생산과 소비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특징만 본다면 산업혁명의 원인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과학의 발전을 원인으로 볼 수도 있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혁신을 원인으로 볼 수도 있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곳은 영국이었다. 왜 영국이었을까. 산업혁명 직전인 18세기 전반기, 영국이 유럽 다른 국가들에 비해 과학 수준이 앞섰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산업혁명이 과학적 영감과 이론에 의해 촉발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증기기관은 기원전 1세기 알렉산드리아에도 존재했으나 18세기 영국에서 실용화됐으며, 면방적 기계의 발명도 과학 발전보다는 면직물 수요 증대에 따른 상업적 유인에 대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과학은 산업혁명을 통해 발전됐고 과학자들도 산업혁명 기여자라기보다는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진보의 수혜자로 보는 게 적합하다. 산업혁명을 가져온 진짜 요인은 혁신을 촉발시킨 기업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영국에서 기업가정신이 확산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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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부터 진행된 종획운동(enclosure movement)의 결과 농촌의 많은 사람들이 이전의 궁핍 상태에서 벗어나 생산과 소비가 보다 개선된 임금 근로자가 됐다. 이들 근로자는 임금이 올라가면서 다양한 상품의 중요한 소비자가 됐다. 면직물의 경우 영국 근로자들의 소득이 상승한 반면 가격은 급락해 대량 소비가 시작됐다. 선대제도를 이용한 면직물 생산 증가와 함께 영국 식민지를 비롯한 해외에서의 영국 면직물 수요도 급증했다. 선대제도는 농촌 가내수공업에 기초하고 있어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힘들었지만 경쟁을 제한하는 길드시스템에서 벗어나 기업가들이 자유롭게 이윤과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기업가정신의 확산은 재산권이 제도적으로 확립되고 생산과 이윤 추구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생겨날 수 있다. 영국은 명예혁명 이후 의회 입법권 및 재정에 대한 권한 확립, 보통법체계 수립 및 사법체계의 효율성 제고를 통해 재산권을 보장했다.
이 같은 재산권 제도의 확립은 혁신과 효율적 생산을 이끌어냈다. 재산권 강화와 중상주의적 보호주의 쇠퇴 등으로 시장을 통한 이윤창출 기회는 늘어났다. 시장의 팽창과 특허법의 등장으로 기업의 혁신적 경제활동은 크게 촉진됐다. 즉 영국에서는 명예혁명을 계기로 제도적으로 자본주의적 유인구조를 갖추게 된 것이다. 자유로운 기업활동이 보장되는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플라잉셔틀, 스피닝 제니와 같은 직조기 및 방적기 발명·개발이 이뤄졌고 그 같은 혁신을 통해 생산성이 크게 높아져 영국 내 면직공업이 급성장했다.
유럽의 대륙 국가들과 달리 18세기 영국에서는 경쟁을 제한하는 ‘수공업 길드’가 상당히 약화됐다. 따라서 영국 기업가들은 대륙 국가에 비해 투자, 혁신, 생산, 이윤추구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농촌 가내수공업에 기초한 선대제도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면직공업은 수요가 늘어나자 기업가들이 생산성 향상 필요성을 절감했고 기업가정신이 확산될 수 있는 자본주의적 유인구조 아래에서 혁신이 촉발됐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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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이 영국에서 발생한 원인을 해외교역 증가, 소득 증대 등 다양하게 들 수 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17세기 후반 명예혁명을 계기로 확립된 제도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통해 시장에서의 경쟁과 이윤 추구가 가능한 자유시장, 자유기업의 제도적 기반이 확립돼 혁신과 효율적 생산의 유인체계로 작용했던 점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이다.'
송원근 <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