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독일에서 배운다
비용편익 분석에 강한 경제금융 전문가들은 한국에 의한 북한통일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대박론’과 ‘쪽박론’이 그것이다. 쪽박론자들은 ‘한국의 경제력이 월등하지만 북한인구 전부를 먹여 살리기엔 아직 작다’는 점을 거론한다. 동독을 흡수통일할 당시 서독의 경제력이 세계 톱 수준이었는데도 비용부담에 허덕였던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어려움은 훨씬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다. 대박론자들은 정반대다. 비용이 들긴 하지만 인구증가와 국토 확장, 경제성장으로 한국이 세계 5위권 경제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본다. 양쪽의 얘기를 들어보자.
“독일보다 힘들 것”
연초에 골드만삭스의 권구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동독을 흡수통일한 서독처럼 남한이 북한주민에게 연금을 주게 되면 통일은 쪽박이라는 표현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독일처럼 보조금을 주는 식의 통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통일비용 면에서는 당사자 간 경제와 인구의 규모, 또 차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을 기준으로 한 통계를 사용했다. ‘남한 대비 북한의 인구비율은 48%. 북한 2330만명, 남한 4850만명. 북한의 국내총생산(GDP) 249억달러, 남한 9287억달러로 남한의 2.7%. 북한의 정부예산 규모 35억달러. 남한(2216억달러)의 1.6%에 불과.’
그는 이를 1989년 독일통일 당시 동독과 서독의 경우와 비교했다. “동독인구는 서독의 27.2%로 남북한보다 비율상 적었다. GDP에서는 동독이 서독의 9.0%였으며, 정부 예산비율도 59.1%에 달했다. 흡수통일을 가정할 때 서독에 비해 남한이 인구 등 모든 부문에서 부담이 크다. 반면 경제규모에서는 남한이 서독과 비교해 모자라고 북한도 동독보다 못하다. 한국은 서독보다 훨씬 많은 재정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3600조원 vs 6800조원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대박론자들은 한마디로 비용보다 편익이 더 크다고 일축한다. 통일연구원에 따르면 2030년 통일이 된다는 전제 하에 2050년까지 투입해야 할 비용은 정부부문 831조원, 민간부문 2800조원 등 총 3600조원에 달하지만 혜택은 680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간부문은 생산을 위한 투자성격이어서 정부지출분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셈이다. 도로 철도 통신 등 경제 인프라 투자와 보건, 복지비용에 대부분이 사용될 전망이다.
관건은 북한 주민의 소득수준을 단번에 한국의 50% 수준까지 끌어올릴 것이냐에 모아진다. 그럴 경우 통일비용은 껑충 늘어날 수 있다. 또 다른 연구소에선 소득지원액이 급증할 경우 9년 안에 800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한다.
혜택 부문에서는 국내총생산 증가로 이어질 혜택이 6300조원으로 가장 많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남북한 대치에 따른 국방·안보와 사회 분야의 비용감소 등 혜택이 각각 300조원, 200조원으로 추정됐다. 이런 비용을 모두 세금으로 댈 수는 없다. 가능한 한 해외 투자유치를 통한 장기 비용조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북한 주민을 위한 각종 복지비용은 어쩔 수 없이 세금에서 나올 공산이 크다.
세계 5위권 경제대국
통일을 통해 한국은 저출산,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고, 북한은 새로운 제조업 기지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통일한국은 모든 부문에서 고비용 구조를 띤 분단형 경제구조와 완전히 다른 대륙형 경제로 환골탈태할 것이라는 얘기다. 북한지역 12만여㎢를 리모델링하면서 나타날 일자리 등 내수시장 확대는 규모를 예측하기도 힘들다. 러시아와 중국, 일본을 잇는 요충지로 동북아 경제활성화의 핵심역할도 할 수 있다. 텅빈 북한에 대한 해외 투자유치로 한국은 가장 큰 규모의 국제시장이 될 수도 있다. 통일국가는 소규모 개방경제체제를 넘어 30~40년 이내에 프랑스, 독일, 일본을 능가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자유시장경제 통일
통일은 한국의 북한흡수 통일이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잘사는 지름길이다. 한국이 정부수립 60여년 만에 경제기적을 일으킨 것도 이 두 가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한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인구만 많아서도, 땅만 커서도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와 제도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중국 등 수많은 나라가 빈곤에 허덕였던 이유도 자유와 시장을 질식시킨 절대권력 탓이었다.
18세기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자유와 시장은 권력이 아닌 법치에 의해 작동된다고 했다. “법은 안전을 낳고 안전은 호기심을 낳으며 호기심은 지식을 낳는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의한 통일만이 비용을 지식으로 대체시키고 빠른 시일 내에 나라를 성장시킬 수 있다.
통일 전 한국이 해야 할 일 3
남북한 경쟁은 이미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인 석학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역사의 종언’은 아마도 한국에서 재입증될 듯하다. 북한은 이미 국가로서의 경제 존립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000달러도 안되는 수준이다. 미얀마, 방글라데시보다도 낮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2만6000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남한과 격차가 크다. 작은 강이 큰 강에 흡수되듯, 북한이 한국에 흡수될 가능성은 분단 이후 가장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이 통일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한국이 더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전역을 리모델링하고, 2200만명가량의 새 식구를 받아들이려면 더 부자 나라가 돼야 한다. 동독이 서독에 흡수된 것도 ‘소련의 철수’라는 변수 외에 엄청난 경제력의 차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둘째로 통일에 대한 남한 내 교육이 더 이뤄져야 한다. 60년간의 분단으로 남북한 간 언어, 문화의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특히 키, 몸무게 등 신체적 차이는 별도의 DNA를 가진 이민족으로 오해할 만큼 크다. 미국을 인종의 용광로라고 부르듯, 우리도 개방된 사고를 가져야 한다. 방법은 교육뿐이다.
마지막으로 외교를 더 강화해야 한다. 남북한의 통일은 주변국의 영향을 받는다. 미국을 필두로 일본, 중국과의 통일 협력외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남북한의 통일이 동북아의 대박 찬스라는 점을 외교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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