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면 도시는 거대한 파티장
[ 김명상 기자 ] 크기와 매력이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작은 나라지만 낮과 밤, 전통과 첨단, 자연과 도시가 풍성한 즐거움으로 그 위를 교차한다. 오랜 무역과 교류의 역사는 싱가포르를 공존하기 힘든 문화들의 매혹적인 콜라주로 다듬었다. 항구 너머 늘어선 마천루들의 배후에는 넓고 조용한 공원들이 발길을 기다린다. 색색의 페라나칸 가옥들 사이로 인도와 아랍, 중국의 문화가 역동적으로 뒤섞인 곳. 그곳이 바로 싱가포르다.
활기찬 도시의 매혹, 싱가포르
싱가포르의 가장 유명한 이미지는 융통성 없는 법률일 것이다. ‘쓰레기 하나 없이 청결한 거리’나 높은 벌금에 대한 풍문은 이 작은 나라에 딱딱하고 도덕적인 인상을 덧입혔다. 그러나 매력적인 도시들은 언제나 여행자의 예상을 멋지게 부수곤 한다. 은빛 머메이드 같은 쇼핑몰에서는 젊은 여행자들이 호기롭게 지갑을 연다. 국제적 수준의 스파와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은 휴양지에서의 휴가처럼 여유롭고 풍요롭다. 싱가포르 리버 유역을 따라 펼쳐진 선술집과 바에서 밤은 인공 조명의 색채와 떠들썩한 웃음소리로 산란한다.
제도가 아무리 엄격하다 해도 도시는 삶의 즐거움에 몰두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싱가포르를 돌아보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도심과 센토사 섬, 바탐 섬을 연결하는 하버프런트에서 그 여정을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 도심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 번화가이기도 하지만, 해안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항구도시 싱가포르의 면모를 단박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쇼핑몰 ‘보 시티’와 레스토랑들이 강을 따라 도열한 하버프런트는 센토사 섬의 야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적소로도 유명하다.
테마파크와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여럿 들어선 휴양지 센토사 섬이 어두운 강 너머에서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흔든다. 여행에는 언제나 마법 같은 순간이 있다. 하버프런트의 밤바람은 싱가포르에 대한 선입견을 허물고 호기심을 한껏 증폭시켜 준다.
랜드마크 마리나베이샌즈
싱가포르 남쪽 끝의 마리나베이는 바다와 하늘 사이에서 고층 빌딩들이 공중을 떠받치듯 도열한 지역이다.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머라이언 상, 세계적인 수준의 예술 공연이 열리는 에스플러네이드 등 중요한 볼거리도 몰려 있다. 마리나베이에서 무엇보다 더 빠르게 시선을 붙드는 것은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이다.
55층짜리 타워 3개 동을 직선 다리로 이어 하나의 건물로 완성한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은 싱가포르의 가장 새롭고 인상적인 랜드마크다. 이 정도 규모의 호텔은 단순한 숙박 시설에 머물지 않는다. 예술가들과 공조해 대형 설치작품을 인테리어로 활용한 마리나베이샌즈 아트 패스, 싱가포르 최고의 전망대와 정원, 황홀한 전망을 자랑하는 풀을 갖춘 샌즈 스카이파크는 그 자체로 거대한 엔터테인먼트다. 초대형 관람차 싱가포르 플라이어도 지나치기 아쉽다.
‘세계 최대 관람차’로 유명했던 런던아이보다 30m 더 높은 135m, 아득한 상공 위를 느릿한 속도로 회전하는 이 놀이기구에서는 시내뿐 아니라 창이 국제공항과 인도네시아까지 창틀 안에 그림처럼 담긴다. 싱가포르 플라이어와 마천루들 너머로 어스름이 찾아오면 마리나베이의 표정은 또 한 번 바뀐다. 낮보다 아름다운 밤의 현장은 싱가포르 리버다. 싱가포르 강을 따라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다 보면 붉은 지붕의 2층 건물들이 시야에 나타난다. 밤의 중심지로 명성을 쌓아온 지역, ‘클락 키’다. 다섯 블록에 걸친 창고 건물들은 그 효용을 다한 후 한동안 잊혀졌지만 복원 사업과 함께 멋진 재즈 클럽과 카페, 바로 부활했다. 검은 강 위로 반사되는 찬란한 불빛은 이 지역을 거대한 파티장으로 만든다.
다양한 문화의 전시장
분주한 쇼핑가와 유흥가가 싱가포르의 현재라면, 도시의 뒷골목에는 역사의 지층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인도 중국 말레이 등 싱가포르에 정착한 민족들은 자신의 문화를 타지에서도 지켜왔다. 영국 식민지 시절, 유럽인과 중국인, 말레이시아인들의 거주지는 각각 분리돼 있었다. 도시의 문화적 경계선은 그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고 현재 이 지구들은 차이나타운, 리틀 인디아, 아랍 스트리트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특유의 개성과 활기를 간직하고 있다.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의 첫인상은 중국 거리의 전형적 풍경이다. 장대 빨랫대와 공사장의 대나무 지지대, 마작을 하는 사람들, 붉은 간판은 익숙함과 설렘을 동시에 안긴다. 에스킨 로드를 지나 언덕길로 올라가면 좀 더 이색적인 거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클럽 스트리트와 엥 시앙 로드에는 싱가포르 전통 가옥 ‘숍하우스’의 또 다른 현재진행형을 즐길 수 있다. 동남아시아의 더운 기후와 유럽의 건축 양식이 소박하지만 매력적으로 만난 숍하우스들은 현재 부티크 호텔이나 카페, 골동품 상점, 패션 셀렉트 숍 등 다양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싱가포르 문화의 정수 페라나칸
아랍 스트리트의 공기는 또 다르다. 현재 싱가포르에서 가장 인구 비율이 높은 종족은 중국인이지만, 이 섬의 첫 번째 주민은 말레이시아인이었다. 회교 국가인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랍 스트리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종교적 상징물들이다. 이곳의 랜드마크인 술탄 모스크에서는 하루에 다섯 번 기도 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나온다.
시장 거리의 풍경은 그보다 더 경쾌하고 자유롭다. 실크와 아름다운 패브릭, 카펫, 금속 공예품 등이 난전에 널린 모습은 거니는 것만으로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한편 카통 전통지구에서는 다양한 민족 구성이 탄생시킨 싱가포르만의 문화인 ‘페라나칸’을 경험할 수 있다. 페라나칸은 아랍, 인도, 중국, 유럽 등 싱가포르에 흘러든 지역색들이 화학반응한 결과다. 페라나칸 가옥은 코린트 양식 기둥, 지중해식 덧문, 중국의 유약 타일, 남국 분위기의 장식품 등 집 한 채에 다채로운 문화가 깃들어 있다.
싱가포르=정미환 여행작가 clart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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