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kimyisok@daum.net>
"경영행위 직감시 나선 국민연금
정치바람 타는 군기반장 아니라
재무적 투자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라그룹 계열 만도는 지난 7일 주주총회를 열어 참석 주주의 72% 찬성으로 신사현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재선임했다. 이 문제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13.4%의 주식을 가진 2대 주주 국민연금의 ‘국민연금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가 신 부회장이 대표인 만도가 한라건설 유상증자에 참여함으로써 주주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그의 재선임에 반대표를 행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은 국민연금의 성공적인 자산운용을 부정하는 자가당착적인 성격을 지닌다.
지난해 말 새로 임명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기업들을 방문해 당분간 재무적 투자자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했다. 다시 말해 기업경영의 구체적인 안건에 대한 반대표를 자제하고, 투자대상 회사들이 국민연금의 수익률 제고에 반하는 경영상 결정을 할 경우 주식을 파는 ‘매’를 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사실 이것은 기업들에는 가장 ‘무서운’ 원칙의 천명이다. 주식을 판다는 것은 해당 기업에 단지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미련 없이 결별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위원회 주장처럼 만도의 한라건설 유상증자 참여가 주주가치를 훼손했나. 그렇다면 국민연금 운용팀은 만도에 대한 지분율을 줄여야 했고, 유상증자 참여로 주가가 하락했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을 포함한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는 만도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만도가 한라건설에 대한 유상증자를 결정한 지난해 4월12일부터 올해 주총 하루 전인 지난 6일까지 기관투자가 지분율은 약 26%에서 43%로 17%포인트 늘었으며, 국민연금 지분율도 9.7%에서 13.4%로 3.7%포인트 증가했다. 더구나 같은 기간 중 코스피 지수는 2.4% 정도 오른 데 비해 만도 주가는 13만6500원(3월6일)으로 유상증자 결정 시점에 비해 약 37% 높아졌고, 한라건설 주가도 같은 기간 6.9% 높아졌다.
유상증자 참여와 같은 경영 결정이 부실 계열기업을 도와주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될 수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명한 투자였는지 여부는 어떤 가격에 만도가 한라건설 주식을 인수하느냐와 한라건설의 회생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에 달려 있다. 국민연금 운용팀이 만도 지분율을 유상증자 참여 이후 늘린 것은 유상증자 참여 조건이 나쁘지 않다는 경영진 결정을 승인했음을 뜻한다. 실제로 코스피 상승폭을 넘는 만도의 주가 상승 비율은 그 판단이 현명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위원회는 유상증자 참여를 주주가치 훼손이라며 기존 경영진의 이사 재선임을 반대함으로써 국민연금 운용팀의 결정을 부정했다.
의결권을 행사해 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지는 것은 반대 목소리를 내는 데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 내기는 국민연금 운용수익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사실 이 위원회는 정부 사용자 노조 등 여러 이해관계자 대변자들의 집합체여서 태생적으로 정치적 고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위원회가 투자대상 회사의 이사 선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최고로 유능한 경영자가 아니라 노조나 정치권, 정부 등 어디에도 밉보이지 않은 인물이 승인될 가능성이 높다.
주식가치를 낮출 가능성이 있는 유상증자에 대해 투자자가 예민하게 살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수익률 제고를 위한 수단일 때 의미가 있다. 경영진의 의사결정으로 주주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면 국민연금은 주가 동향을 예의주시해서 실제로 주주가치 훼손이 주가 하락을 통해 확인되는지 살펴보고, 주식을 팔고 나갈 필요가 있다. 이것이 기업들로 하여금 주주이익을 최대한 고려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채찍이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kimyiso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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