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정민 기자 ] '직구(직접구매)'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국내에 진출한 해외 브랜드들이 가격 책정 부담 등에 몸 사리기에 나서고 있다.
해외 직접구매와 병행수입 확대로 최근 한국에 진출한 해외브랜드들이 제품 가격을 크게 부풀리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일부 브랜드들은 국내 수입업체들이 제품 가격을 내렸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소비자들이 갈수록 똑똑해지면서 과대평가받고 있던 해외브랜드들도 가격 '다이어트'에 나서는 형국이다.
7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에 직진출한 '팀버랜드'는 제품 판매가격 책정에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직접구매 열풍, 재진출이란 점 등을 고려해 가격을 합리적으로 산정하는데 무게를 뒀다는 설명이다.
팀버랜드는 대표 제품인 옐로부츠(사진)의 이름이자 브랜드명이다. 그동안 FnC코오롱, 금강제화에서 한국에 제품을 판매한 바 있고, 이후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VF코퍼레이션이 직진출을 결정했다.
이 브랜드 대표제품인 남성용 6인치 프리미엄 위트브라운 워커(모델명 10061)의 가격은 정가가 25만8000원으로 책정됐다. 이 제품의 미국 팀버랜드 공식 홈페이지 가격은 190달러(약 20만2000원)로 5만원 가량 저렴하지만 배송대행비를 고려하면 가격 차이가 다소 줄어든다. 미국에서 정가에 구입한다고 가정하면 국내에서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수준에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팀버랜드 관계자는 "해외 직접구매제품과 달리 사후서비스(AS)가 용이하고 회원제도를 운영해 추가적으로 할인을 받을 수 있다"며 "일부 해외 오픈마켓의 경우 가품일 가능성도 높다는 점에서 정식 제품의 메리트가 크다"고 말했다.
이 같이 직진출 브랜드들과 수입 대행사들은 가격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삼성에버랜드(옛 제일모직)가 선보인 나인웨스트는 지난달 지알아이코리아(GRI KOREA)를 통해 직진출하면서 제품 가격이 10~15% 가량 떨어졌다. 신발은 15~18만원, 합성피혁 가방의 경우 10~20만원 수준으로 가격이 낮아졌다.
홍콩 지알아이 그룹에 함께 속한 브랜드인 '스티브매든'과 '이지스피릿'도 종전 대비 15% 가량 가격을 낮춰 다시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싱가포르 잡화 브랜드 '찰스앤키스'도 이번 시즌부터 가격을 15% 낮춰 판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탈리아 '브루넬로 쿠치넬리'와 새로 파트너가 된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국내에서 제품 가격을 기존보다 15~20% 낮추기로 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그동안 보티첼리로 잘 알려진 진서가 제품을 들여오고 있던 중이었다.
아웃도어 및 캠핑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업체들이 할인 판촉 경쟁을 벌이며 업계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수입브랜드가 제품 가격을 인하했다.
일본 캠핑용품업체 스노우피크는 지난달 25일부터 텐트와 화로 등 일부 품목 가격을 최대 26% 내렸다. 엔화 약세를 이유로 들어 가격을 낮췄다.
유통업계에서는 해외 직접구매 확산과 병행수입 활성화가 이 같은 결과를 불러온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해외 직접구매는 전년 대비 47% 급증한 약 1조1029억원을 기록,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국내에서 가격대가 높은 수입제품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고,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제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작용한 덕이다.
정부의 장려와 함께 병행수입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이마트가 트레이더스 경기 용인 구성점에서 판 '캐나다구스'는 일부 사이즈를 남기고 완판 행렬을 이어갔다. 관세청이 올해 병행수입물품 통관인증업체 선정 기준을 완화하는 등 병행수입을 활성화하기로 하면서 이 같은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 독점 수입업체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수입과 AS, 상담 등에 제반비용이 들어가고 유통업체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단순 가격 비교는 불합리하다는 항변이다.
한 수입업체 관계자는 "해외 본사로부터 물품 사입 이후 마케팅비, 물류비 등이 추가로 들고, 재고에 대한 부담, AS 등으로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병행수입 물품은 시즌이 지난 제품들을 할인된 가격에 들여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