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2월21일(17:0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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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과 해외 사모펀드 간 ‘세금 전쟁’의 역사는 외환 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미은행(2000년 칼라일 컨소시엄 인수), 제일은행(1998년 뉴브릿지캐피탈), 외환은행(2003년 론스타) 등 금융 기관들이 줄줄이 외국계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기는 등 당시 한국은 글로벌 M&A(인수·합병) 전문가들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한국 M&A 시장의 역사는 이렇게 수탈의 역사로 시작됐다. 세금 문제에서도 국세청을 비롯해 한국 정부는 아무런 방비를 하지 못했다. 2004년 칼라일이 한미은행을 씨티그룹에 매각했을 때 8000억원에 가까운 양도 차익을 거뒀지만 국세청은 세금을 한 푼도 걷지 못했다. 칼라일은 한미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말레이시아에 특수목적법인을 세웠는데 당시 국세청은 한-말레이시아 조세협약에 따라 한국 정부는 과세권을 행사할 수 없다며 떠나는 칼라일을 아쉬운 눈으로 바라봐야했다.
2005년 뉴브릿지캐피탈이 1조1500억원의 차익을 거두며 제일은행을 스탠다드차타드에 매각할 당시까지만해도 한국 정부와 국세청은 외국계 사모펀드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기껏해야 뉴브릿지캐피탈을 압박, 협력 기금 명목으로 200억원 가량을 한국에 남겨놓도록 했을 뿐이다. 당시 거래에 관계됐던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한국 정부가 요구한 금액은 1000억원이었다.
국세청이 외국계 사모펀드와 세금 전쟁의 서막을 연 것이 바로 이 때부터다. ‘먹튀’ 논란 등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뉴브릿지캐피탈, 론스타, 칼라일 등에 대해서 일제히 세무조사를 하게 된다. 국세청은 사모펀드가 조세회피 지역에 설립한 법인을 페이퍼컴퍼니로 판단, 사모펀드에 투자한 출자자(LP)에게 납세 의무를 지우는 ‘실질 과세 원칙’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대법원은 제일은행 건에 대해 40명의 해외 펀드 출자자를 납세 의무자로 보고 인수자인 스탠다드차타드에 원천징수분 소득세 430억원을 내도록 한 국세청의 조치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오락가락하는 국세청
이렇게 오기까지 국세청은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 어떤 경우엔 모순과 자가당착에 빠진 사례들
도 꽤 많다. 국세청은 수익의 실질 귀속자를 따져 세금(원천징수)을 물리는 실질 과세 논리와 양도차익을 거두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사모펀드의 한국법인이므로 여기에 법인세를 물린다는 고정사업장(permanent establishment) 논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론스타 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국세청과 론스타가 맞붙은 소송은 세 가지다. 2005년 스타타워를 매각하면서 얻은 부동산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가 첫번째로 대법원에서도 론스타가 패소했다.
두번째는 2007년 론스타가 블록딜 형태로 외환은행 지분 13.6%를 1조1928억원에 매각한 것에 대한 과세다. 매수자인 크레딧스위스증권은 국세청에 납부할 1192억원의 원천징수세액을 제하고 매각 대금을 론스타에 지불했는데 론스타는 이것이 부당하다고 소송을 냈고, 3심까지 론스타가 승소했다. 최종 판단은 대법원에 가서야 판가름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 세번째는 2012년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 경영권을 4조9865억원에 인수하면서 발생한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소송이다. 외환은행 노조에 따르면 이 거래에서 발생한 원천징수세액은 5465억원으로 이에 대해서도 론스타는 소송을 제기,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3개의 법적 분쟁을 벌이면서 국세청은 모순된 과세 논리를 적용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스타타워’ 건과 ‘2012년 매각’에 대해선 론스타 한국 사무소를 거래를 위해 자금이 거쳐가는 형식상의 도관(導管, pass-through 또는 conduit)으로 보고 론스타에 투자한 펀드 출자자(LP), 즉 수익의 실질 귀속자를 납세 의무자로 판단했다.
하지만 2007년 소송에선 스티븐 리 한국 대표의 역할이 가장 컸다는 것 등을 근거로 론스타 한국 사무소가 형식상의 역할이 아닌 실질 거래 당사자라며 론스타 한국에 과세했다.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론스타는 동일한 구조로 스타타워와 론스타 지분을 인수하고 매각했지만 정작 국세청은 모순된 논리로 접근하면서 패배를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2년 소송과 관련해서도 국세청은 펀드 출자자 가운데 거주지가 한국과 조세조약을 맺지 않은 곳에 있을 경우에 한해서만 과세 권한을 갖고 있지만 이를 불문하고, 전체 LP에 과세해 론스타측의 반발을 사고 있다. 론스타 펀드 출자자들의 절반 가량은 버뮤다에 소재를 두고 있어 양도차익에 대해 국세청에 납세 의무가 있지만 나머지 LP들의 소재지는 미국이어서 과세가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AB인베브와도 세금 문제로 악연
오비맥주 건과 관련해서도 국세청은 자기가 만든 논리에 당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2009년 AB인
베브가 KKR-어피니티 컨소시엄에 오비맥주를 팔 때 수익의 실질 귀속자에 과세한다는 국세청의 논리를 역이용, 결국 국세청은 양도차익에 대해 원천징수를 한 푼도 못하는 일을 당했다. 관할청인 대전지방국세청이 이번 오비맥주 매각과 관련해서 속된 말로 이를 갈고 있는 이유다.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인베브가 오비맥주를 소유한 지배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KKR컨소시엄에 매각하기 직전 연도인 2008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오비맥주는 인터브루 아시아 홀딩스 컴퍼니(이하 IAHC)가 50.93%를, 그리고 홉스(Hops BV)와 인베브 벨기에가 각각 44.16%, 4.91%를 소유하고 있었다.
인베브 벨기에는 벨기에에 있는 본사고 IAHC와 홉스는 각각 싱가포르와 네덜란드에 거주지를 둔 인베브 자회사들이다. 이들 3개 회사는 오비맥주로부터 매년 배당을 받아갔다. 오비맥주는 2007년 1192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938억원을 배당으로 지출했다. 2008년엔 배당성향이 92.76%에 달했다. 1159억원의 순이익을 벌어 1075억원을 인베브 등 대주주들에게 보냈다.
양도차익은 조세조약 유무에 따라 한국 국세청 입장을 기준으로 과세 혹은 면세 둘 중의 하나지만 배당이나 이자는 조세조약을 맺었더라도 각각의 제한세율을 적용해 일정 부분을 국세청에 내야한다. 오비맥주를 소유한 3개의 법인은 배당에 대한 세금을 국세청에 납부하고 있었다.
그러다 AB 인베브가 오비맥주를 매각할 때 문제가 발생했다. 벨기에, 네덜란드는 한국과 조세조약을 맺은 국가라 이곳에 소재한 홉스와 인베브 본사는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을 한국에 납부할 의무가 없었지만 싱가포르는 사정이 달랐다. 배당세율은 벨기에, 네덜란드보다 현저히 낮았지만 양도차익에 대해선 한국 정부가 과세권을 갖고 있었다.
배당에 대해 절세 효과를 누리던 AB인베브로선 1000억원 가량의 양도차익에 대한 법인세를 부담해야할 상황이었다. 이 때 AB인베브는 싱가포르 법인인 IAHC가 단순한 페이퍼 컴퍼니로 도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국세청의 논리를 역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납세 의무는 싱가포르 법인의 실질 소유자인 벨기에 소재 AB 인베브 본사가 지게 되는데 벨기에는 양도차익 면세 지역이므로 AB인베브로선 1000억원 납부 의무가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대신에 그동안 싱가포르에 준해 낮은 세율을 적용받은 배당세를 벨기에로 바꿔 100억원을 추가 납부했다. 1000억원을 100억원과 맞바꾼 것이니 AB인베브는 굉장한 절세 효과를 얻었고, 반면 국세청은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셈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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