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연설·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과 대담
한국, 외환위기 교훈 덕에 금융위기 쉽게 벗어나
'대불황의 시대' 외부 변동성에 대비하는 정책을
[ 박동휘 / 강영연 기자 ]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이 여전히 세계 경제의 뇌관입니다. 겉으론 잠잠해 보여도 조만간 문제가 터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폴 볼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한국경제TV와 한경미디어그룹이 18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개최한 ‘2014 세계경제·금융 컨퍼런스’에서 거침없는 직설 화법으로 글로벌 경제를 전망하며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볼커 얼라이언스’의 한국 멤버이자 30년 넘게 우정을 쌓아온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과의 대담에서 “중국이 세계 경제 1위로 올라설 것이며, 아베노믹스는 과소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며 아시아에 대해 우호적인 평가를 내놨다.
○“양적완화 축소는 정상 회복 과정”
‘글로벌 경제를 진단해 달라’는 사공 이사장의 질문에 볼커 전 의장은 “대불황(great recession) 이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묘사했다. “당분간 호황을 기대하지 말라”며 고언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중국, 일본 등을 중심으로 점진적인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며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펼쳤다. “주택값이 회복되고 정부 재정적자가 축소되는 등 미국 경제에 성장세를 유지할 만한 모멘텀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양적완화 축소도 이런 배경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사공 이사장은 “미국은 일반적인 국가가 아닌 최고 경제 대국”이라며 “테이퍼링 등 금융조치들이 일부 신흥국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Fed가 다른 국가에 대한 배려와 인간성을 가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와 같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양적완화 축소에 대해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볼커 전 의장은 중국과 일본, 한국 등 아시아 3개국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놨다. “중국은 생산과 소비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등 성장통을 겪겠지만 규모면에서 세계 1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공 이사장이 “아베노믹스가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하자 “지나친 비판”이라고 응수했다. “적극적으로 통화 및 재정정책을 시행한 결과 장기 디플레이션에서 일본 경제를 구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이유에서다.
○“외환위기의 교훈이 한국 살리고 있다”
유로존이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는가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볼커 전 의장은 “유로존은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독일과 북유럽은 비교적 양호하지만 남유럽에 위험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로존이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마리오 드라기 유럽 중앙은행 총재가 노력하고 있고, 독일 등 유럽연합(EU)의 구성원들이 이제는 괜찮다고 믿고 있는 덕분”이라며 “하지만 은행 제도 등 수면 아래 감춰진 구조적인 문제를 개혁하지 않고선 조만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볼커 전 의장은 “1966년 체이스맨해튼은행에 근무하던 시절에 처음 방한했다”고 운을 떼며 한국 경제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당시 한국 정부가 추진하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보고 달성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국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장을 이뤄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국이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얻은 교훈 덕분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금방 벗어날 수 있었다”며 “한국은 개방된 세계 무역 및 금융시장 덕을 톡톡히 봤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자본 흐름이 자유로운 시대엔 경제 규모가 큰 나라조차 외부로부터 오는 변동성과 불확실성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도 이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박동휘/강영연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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