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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규제에 중독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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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육성 명분으로 양산한 규제
다른 누군가의 이익을 침해할 뿐
경쟁력은 시장경쟁서 나오는 법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시시포스는 기슭에 있는 큰 바위를 온 힘을 다해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렸다. 그 순간 바위는 기슭으로 다시 굴러떨어졌다. 시시포스는 측량할 길 없는 시간과 싸우면서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다. 한국의 규제개혁은 ‘시시포스 바위’다. 김영삼 정부 이래 규제완화를 외쳤지만 공염불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드디어 칼을 뺐다. 취임 후 처음 가진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는 기자회견장에서 ‘규제 총량제’를 공식화했다. 의지 표명으로 대통령이 직접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주재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직접 규제개혁을 챙기겠다고 선언한 만큼 기대가 되지만, 규제개혁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는 솔직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규제총량제를 시행하려면 우선 ‘규제의 양’을 계산해야 한다. 그랬다고 치자. 방법은 두 가지다. 규제를 ‘양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이 같은 규제총량제에는 함정이 있다. 작은 규제를 없애고 큰 규제를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질적’인 측면에서 규제총량제를 모색해야 한다. 신규 규제 도입 시 증가되는 규제비용을 분석하고 동일한 비용만큼의 기존 규제를 폐지하는 조건으로 규제 신설을 허용하는 ‘규제비용 총량관리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경제계산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또 다른 대안은 의원입법에 대해 규제영향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동안 규제심의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정부가 ‘청부입법’으로 의원입법을 활용해 온 것은 기지의 사실이다. 행정부와 국회의 기이한 공조인 것이다. 가결 건수 기준으로 19대 국회의 의원입법이 무려 82%나 된다. 하지만 청부입법 금지는 곁가지다.

규제 총량제는 ‘규제관리’에 지나지 않는다.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주지하다시피 규제는 공익을 목적으로 민간의 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중립적 ‘권력실체’의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 ‘발전국가모델’의 유산이다. 시장은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의 실현을 도와줄 뿐 어떤 의도나 목표를 갖고 있지 않다. 시장에서는 서로 다른 가치관, 지식, 선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로운 협상과 계약을 통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끊임없이 모색한다. 하지만 규제는 기본적으로 설계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누구의 이익을 위해 다른 누구의 이익을 침해하는 구조를 갖는다. 규제는 기본적으로 이익집단에 포획될 수밖에 없다. 공익은 명분일 뿐이다. 규제가 많을수록 경제자유는 제약된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제조업과 서비스업 규제가 각각 1073개, 4336개로 나타났다. 공통으로 적용되는 규제를 빼면 두 산업 간 차이는 더욱 크게 벌어진다. 서비스업 규제(3601개)가 제조업(338개)의 10배에 달한다. 박 대통령이 내수활성화를 위해 꼽은 5대 역점산업인 ‘보건의료, 교육, 관광, 금융, 소프트웨어’ 규제가 전체 서비스업 규제의 47.6%나 된다. 제조업 규제가 적은 것은 ‘시장규율이 규제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경쟁력도 생겼다. 하지만 보호·육성은 규제를 양산했다. 상권보호, 출점거리 제한, 대형마트 의무휴일로 문제를 풀 수는 없다. 가계 통신비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에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발의됐다. 명분은 아름답다. 투명성을 제고하고 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통신비를 줄이려면 우선 통신서비스 이용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경쟁을 촉진시켜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이미 규제에 중독돼 있다. ‘필요악’에 지나지 않는 규제가 ‘당연선’으로 여겨진다. 규제총량제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규제를 보는 눈이다. 미국 연방대법관이었던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경구는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가 선한 뜻에서 일을 벌일 때 가장 큰 경계심을 갖고 자유를 지켜야 한다. 자유에 대한 더 큰 위험은 열정적 인간, 좋은 뜻은 가졌으나 그들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은밀한 침해 속에 숨어 있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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