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서 가져온 정기를 이글에 담아
오영호 < KOTRA 사장 youngho5@kotra.or.kr >
![](http://www.hankyung.com/photo/201401/2014010644331_AA.8222524.1.jpg)
벌써 몇 해째인가. 매년 새해의 첫날을 태백산에서 맞이하고 있다. IMF 구제금융이 시작되던 그해, 속절없는 심정으로 처음 찾은 곳이 태백이었다. 공직에 몸담은 자로서 자괴감이 컸던 탓일까.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국가 위기 사태에 기도밖에 할 게 없다는 심정으로 천제단에 올랐던 것이다.
일출의 감흥을 가슴에 안고 천제단으로 향했다. 준비해온 술과 포를 제단에 올리고 머리를 조아렸다. 경제가 활짝 기지개를 펴는 한해가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온 국민이 서로 배려하고, 포용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줄탁동시(啄同時)하면 반드시 소망이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아직 여물지 않은 부리로 사력을 다해 껍질을 쪼아대고, 그 신호를 알아차린 어미 닭이 바깥에서 부리로 껍질을 쪼아 깨뜨리는 노력이 동시에 일어나야 하듯 말이다. 회사, 지인, 친지, 가족의 무사안녕까지 빌고 단을 내려오니 마음이 구름 위를 나는 듯 가볍다.
하산 길은 겨울 태백산에 오르는 기쁨을 만끽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아침 햇살에 인간이 그린 어떤 회화보다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순백으로 뒤덮인 백두대간의 능선들을 굽어보며 상서로운 기운을 맘껏 들이마시는데, 폐부 깊숙이 와 닿는 청량감에 가슴이 시릴 정도다. 신령스러움을 더하는 주목 군락지는 또 어떤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들이 눈 속 깊이 발을 묻고 수빙(樹氷)과 눈꽃을 매단 채 기기묘묘(奇奇妙妙)하게 서 있는 모습들에 절로 탄성이 터진다.
겨울 태백산은 순백의 눈과, 천지사방으로 뻗어나가며 굽이치는 능선들과, 산호 같은 주목들이 빚어내는 향연으로 눈이 부시다. 이곳을 일러 왜 태백(太白)이라 하는지 알 수 있다. 아직 식지 않은 태백의 신성한 정기를 보내드리니 듬뿍 받으시길.
오영호 < KOTRA 사장 youngho5@kotr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