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충분한 실력 못갖춘 한국
국내용 흰소리로 거드럭대기보다
덩샤오핑 '도광양회' 교훈 삼아야"
최중경 < 美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choijk1956@hanmail.net >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며 주요 20개국(G20)의 하나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이니 위상에 걸맞은 목소리를 국제사회에서 내야 하며, 경제개발 모범국가로서 후발 개발도상국가들에 경제개발모델을 가르쳐 주면서 원조도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렇지만 중국의 현대화를 이끈 덩샤오핑이 ‘충분한 힘을 기르기 전에 고개를 세우는 일을 피하라’(도광양회)고 했듯이 국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나 국제기구들에 대해 외교적 무례를 범하거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한국이 어느 정도 대접을 받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의 행보를 보면 분수에 맞지 않게 행동해 선진국들에는 시건방지다는 인상을 주고, 후진국들에는 개구리 올챙이 시절 잊었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지 않은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언제인가 정부는 ‘21세기 초에 영국을 제치고 G7 국가 반열에 든다’는 야심찬 비전을 발표했다. 영국이 발칵 뒤집혔다. 그냥 G7이 된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영국을 제친다고 해서 ‘해가 지지 않던 나라’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 후 영국과의 관계는 서먹서먹했고, 외환위기 직전 살얼음판을 걷던 때 영국을 대표하는 파이낸셜타임스지는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대외공표 수치와 달리 바닥났다’는 취지의 폭로기사를 1면 톱으로 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도록 결정타를 가했다.
외환위기 이후 IMF 총회에 참석한 한국대표는 총회연설에서 갑자기 ‘IMF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IMF 한국담당과장이 한국대표단이 머무는 호텔로 와서 항의했다. 이어진 IMF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개혁은 시늉만 낸 거짓개혁인 것으로 의심된다”는 폭탄선언이 나왔고, 파이낸셜타임스지의 1면 톱을 장식하면서 스타일을 구겼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한 뒤 ‘한국에 유리한 결과를 이끌었다’는 협상대표의 무용담이 국내언론에 실리자 미국에서 재협상을 요구하는 여론이 조성돼 관철된 사례도 국내 홍보용 큰소리가 국익에 해를 끼친 사례다.
최근 미국 재무부는 의회에 내는 반기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의 외환정책에 대해 강한 발언을 쏟아 냈고 제이컵 루 재무장관의 아시아순방에서 한국은 제외됐다. 원화는 현 정부 들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절상된 통화 중 하나인데도 일본, 중국보다 훨씬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 예상외의 결과에 실망이 컸는지 “미국의 압력에 관계없이 우리 길을 간다”고 각을 세우는데, 어려울 때 통화스와프 안 해준다고 하면 어쩌려는지 걱정이다. 반응을 자제하고 강한 톤의 보고서가 나온 배경을 캐는 것이 순서이다.
국제사회에서 당당해지려면 분수를 지켜야 하고 국내 홍보용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정치권과 언론도 국제활동 결과에 대해 국익을 고려한 담담한 평가를 내려야 ‘돈키호테식 발언으로 개인은 점수 따고 국익은 멍드는’ 폐습이 끊어진다. 서울에 왔을 때 고위직이 만나 주지 않아 실무자를 만나고 간 미국 기업대표가 나중에 미국 장관으로 발탁돼 난감한 적도 있었는데, 미국의 한 연구소 한국 전문연구원의 방에 가면 일본 각료와 찍은 사진은 있어도 한국 고위층과 찍은 사진은 없다. 일본은 왜 주요 선진국에게 몸을 낮추는지, 그래서 무엇을 얻는지 보아야 한다. ‘논의를 주도하네, 조정자 역할을 하네’ 분수를 모르고 나서는 사이에 국익은 손상된다. 한국이 나서는 것을 반길 나라도 드물고 나설 능력도 부족한 것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분수에 맞는 목소리를 내되 예의를 갖추고 최대한 정제된 표현을 쓰는 훈련이 꼭 필요하다.
최중경 < 美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choijk1956@hanmail.ne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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