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규 예산실장, 대량 해고·복지중단 경고
"준예산 땐 SOC·산업지원·양육수당 중단"
[ 이심기 / 김재후 기자 ] 정부가 준예산 편성시 국가 경제에 재앙적 상황이 올 수 있다며 비상태세에 들어갔다. 대규모 해고와 국책사업의 전면 중단, 일자리 및 복지 사업 차질 등 비상사태가 빚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국회는 여야가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 등의 정치적 사안을 놓고 한치도 양보 없는 대치 상태를 유지하면서 예산안 심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사진)은 지난 21일 예산실 직원에게 보낸 긴급 이메일을 통해 “준예산 편성시 끔찍한 결과가 올 것”이라며 “전원이 사표를 낸다는 각오로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 실장은 “준예산의 심각성에 대해 국민이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못박았다.
준예산은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될 때까지 국회에서 예산안을 의결하지 못한 경우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것에 한해 전년도 예산에 준(準)해서 지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헌법(54조)에 따라 국회는 회계연도 시작 30일 전(매년 12월2일)까지 예산을 의결해야 하지만 여야는 아직 심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는 준예산이 편성될 경우 법률상 기관이 아닌 일반 사업비로 고용된 정부·공공기관의 계약직 직원에 대한 인건비 지급이 중단돼 대규모 해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연구개발(R&D) 프로젝트 종사자는 물론 정부 지원금을 받는 민간 사회복지시설 근무자도 포함된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준예산 편성시 의무지출이 아닌 재량지출 사업은 전혀 할 수 없다”며 “사회간접자본(SOC), 산업 지원, 양육수당과 실업 교육 등 재량적 복지 프로그램도 중단되면서 전국의 모든 공공기관에 항의와 비난이 쇄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65만개 노인 일자리 지원 사업과 재취업 훈련 프로그램인 ‘취업성공 패키지’ 등 고용 지원 사업도 멈춘다. 전체 예산의 6.5%를 차지하는 23조원 규모의 철도와 도로, 항만 건설 등 SOC 사업도 마찬가지다. 전체 예산의 30%를 차지하는 105조원 규모의 복지 사업도 차질을 빚는다. 김윤상 기재부 복지예산과장은 “준예산 편성시 정부의 470여개 복지 사업을 재량과 의무지출로 구분하고 지원 요건에 해당하는지 일일이 따져봐야 한다”며 “정상적인 복지 지출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방 실장은 “엄청난 영향 때문에 지금껏 단 한 번도 준예산을 운영한 적이 없다”며 “경제 회복을 위해 정부가 한푼이라도 더 지출해야 할 때 이미 편성된 예산도 집행하지 못한다면 경제에 결정적 피해를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야는 그러나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불과 열흘 앞둔 22일까지 심의 일정을 잡지 못한 채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갔다. 새누리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민주당이 예산안 협의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그러나 국정원 선거 개입 조사를 위한 특별검사 도입과 국회 특별위원회 구성이 이뤄지지 않는 한 예산 심의에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회가 예산안을 심의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최소 20일은 필요하다”며 “내달 2일로 다가온 법정시한을 맞추는 것은 이미 물건너갔고 내달 초까지 심의에 나서지 못하면 연내 통과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심기/김재후 기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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