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처음 '몽타주 기법' 도입한 시집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 출간 최승호 씨
[ 박한신 기자 ] “한국 시의 폭을 넓히고 싶었어요. 아코디언에 비유하면 시라는 아코디언을 엄청나게 크게 만들고 싶은 거죠. 그러려면 새로운 형식이 필요했습니다. 펜을 쟁기 삼아 묵은 것들과 나 자신을 갈아엎으며 시를 쓰고 싶습니다.”
1977년 등단 이후 《대설주의보》《세속도시의 즐거움》《고비》 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모더니즘의 맥을 이어 온 최승호 시인(59·사진)이 또다시 새로운 시도를 했다. 2년10개월 만에 발표한 시집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난다)에서 몽타주 기법을 차용한 시들을 선보인 것이다. 몸담고 있는 서울 숭실대에서 지난 15일 만난 그는 “몽타주 기법을 대규모로 시도한 건 한국 시에서는 처음일 것”이라며 “불협화음이 빚어내는 새로움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몽타주 기법은 서로 다른 이미지와 형식을 나란히 배치하는 일종의 조립 기법이다. 영화 ‘전함 포템킨’이나 최인훈의 소설에서 사용됐고, 파블로 피카소나 조르주 브라크 등의 화가는 이와 비슷한 콜라주 기법을 쓰기도 했다.
이번 시집에서는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이미지와 소재가 충돌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텅 빈 낙타 두개골에 박혀 있던 누런 이빨들/그 이빨들 사이로/모래와 전쟁과 바람이 지나갔으리라’고 노래하다가 돌연 ‘치과의 기계들은 환자들이 부들부들 떨도록 고안된 것 같다. 늙어갈수록 이빨은 녹슨 못처럼 흔들거리다 빠진다’고 전환하는 식이다. 그는 이 같은 효과를 위해 하나의 시를 쓸 때 오랜 시차를 뒀다. 1연을 여름에 쓰고 2연을 겨울에 쓰기도 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의 주된 배경은 ‘허공’이다. 신문기사를 빌려와 쓴 시에서 우주 공간에 대해 쓴 시까지 모두 허공의 이미지를 입고 있다.
“아마 가장 큰 상상력의 공간은 허공 아닐까요. 언어가 닿기 힘든 거대한 침묵의 영역인 허공에 어떤 이미지들을 던지고 싶었어요. 우리 사회, 지구, 태양. 모두 허공에 떠 있습니다. 한편으론 막막하고 외롭지만 허공임을 인식할 때 생기는 자유도 있죠.”
그는 고향인 강원 춘천과 사북 탄광촌, 고비 사막, 서울 등지를 돌아다니며 시를 써왔다. 지금은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내 시는 공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대설주의보’는 사북에서 쓴 거고 ‘고비’는 고비사막에서 썼죠. ‘세속도시의 즐거움’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썼어요. 전 공간을 토대로 시를 씁니다. 허공도 공간 자체를 가장 확대해 놓은 겁니다. 허공 안에 사회 같은 작은 공간이 있죠.”
그는 서울살이가 편하다고 했다. 1982년 처음 서울에 정착한 후 줄곧 토대는 서울에 두고 있었다는 것. 미국 소설가 헨리 밀러가 말한 것처럼 대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익명성과 미로의 즐거움이 자신과 맞는다는 얘기다.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그에게 “새로움이 시의 대중화에 방해가 되지 않느냐”고 묻자 “시인은 몰이해에 대한 고독을 감수해야 하지 않나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저는 행복한 시인입니다. 카프카는 죽은 지 50년 후에 인정받았죠. 이 정도 고독함은 견뎌야 하지 않을까요.”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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