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커지는 환경사고 리스크
지속가능경영 위한 안전판 필요
책임보험 의무화가 합리적 방안"
이은기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환경법학회장 lek9146@sogang.ac.kr
경영과 투자의 길목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튀어나오는 크고 작은 리스크가 놀랍고 부담스럽지만, 리스크를 회피하면 기회도 없고 성공도 없다. 그러나 리스크에 대비하려는 최소한의 준비도 없이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예컨대 자동차 책임보험이 없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에게 충분한 능력이 없어 배상을 못 받는 피해자가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 역으로 배상금 지급을 위해 사고 원인자의 생활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 제도적 불비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제도적 방비를 통해 충분히 예방가능한 일에 자신들의 인생을 소모하는 비극이 발생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자동차를 구입하거나 보험갱신일이 될 때마다 꼬박꼬박 상품설명과 가입재촉이 따르는 현재의 자동차운행 리스크관리 시스템이 고맙게 느껴진다. 보험료 납부가 당장은 성가시고 부담스럽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를 위해 가장 합리적이고 편리한 길을 찾아주는 방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운행 리스크와 비교할 때, 그 범위와 규모가 훨씬 큰 환경오염 리스크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환경오염 수준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무모한 날 것 그대로의 상태로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2012년 9월 경북 구미에서 휴브글로벌 불산 누출사고로 5명이 생명을 잃고 지역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다. 수백억원의 국가재정이 투입됐으나 단기적인 처방에 그쳤을 뿐, 1년이 지나도록 우리 사회의 위험관리 시스템은 변한 바가 없다. 사고발생 공장이 을씨년스럽게 방치돼 있는 와중에 올 한 해에만 벌써 64건의 유독물질 누출 사고로 10명이 숨지고 75명이 다쳤다.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이 리스크관리 제도의 부재와 맞물린 불행한 결과다.
환경사고 발생을 미연에 예방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개별 기업의 합리성과 조심성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안전망을 설계하는 것이다. 사회 안전망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번 국회에 발의된 ‘환경오염피해의 구제에 관한 법률’은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법률이다. 이 법은 환경오염 리스크가 일정 수준 이상 잠재된 시설을 갖추고 있는 기업들로 하여금 책임보험에 가입하도록 함으로써 사고 피해자와 가해기업에 사회부조적 보호책을 제공한다. 갑작스러운 예산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정부에도 물론 혜택이 돌아간다. 현재 몇몇 소수 회사에서 임의로 운영하는 환경보험 상품이 존재하지만, 책임보험 법제화로 보험기반이 확대되고 정부의 관리·감독이 행해진다면 피해자의 이익과 기업의 안전을 보다 충실하게 담보할 수 있다.
‘환경오염피해의 구제에 관한 법률’은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상책을 제공함은 물론, 활성화된 환경보험 시장이 기업에 오염저감의 경제적 유인을 제공해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린다. 환경 리스크 관리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기법과 기술발전이 촉진되므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수익성도 증가한다. 또한 기업의 배상책임을 일정 한도에서 매듭짓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한 환경사고로 부도 사태가 발생할 소지를 최소화한다.
일각에서는 ‘환경오염피해의 구제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인한 기업 부담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목전의 작은 부담을 피하려다가 훗날 이자까지 붙은 막대한 부담을 지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모든 기업은 예외 없이 환경적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제도적 안전장치는 빠를수록 좋다. 기업으로서는 제도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합리적이고 전향적인 법을 수용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경영을 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은기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환경법학회장 lek9146@sogang.ac.k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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