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 주요 경제기관들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을 잇따라 낮추고 있다. 미국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QE) 축소,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의 예상보다 더딘 회복세, 선진국의 중기 재정건전화 계획 부재, 신흥국 성장 부진 등이 이유다. 올 중순까지만 해도 미국·유럽발 경기회복세에 힘입어 세계 경제 희망론이 퍼지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들 기관을 비롯 한국은행까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면서 한국도 ‘저성장의 늪’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올 세계 성장률 전망 3차례 낮춰
IMF는 지난 8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내년 미국의 성장률을 2.6%로 기존보다 0.2%포인트 낮췄다. 선진국 진영의 성장률은 2.1%에서 2.0%로 하향 조정했다. 내년의 신흥국 성장률 전망치는 5.1%로 기존 전망보다 0.4%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봤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아세안5의 성장률 전망치도 5.7%에서 5.4%로 낮춰 잡았다.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9%로 기존보다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는 지난 4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5%에서 3.3%로, 7월에 3.3%를 3.1%로 각각 끌어내린 데 이어 세 번째로 성장률 전망을 낮춘 것이다.
미국의 올해 성장률은 1.6%, 일본은 2.0%로 0.1%포인트씩 낮췄고 신흥국은 4.5%로 0.5%포인트 내렸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재정 긴축 가능성이 부담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신흥국은 전반적인 수요가 감소하는 가운데 대외 차입 여건이 악화된다는 점을 악재로 꼽았다. 특히 ‘아세안5’ 국가의 올해 성장률은 5.6%에서 5.0%로 0.6%포인트나 낮췄다. 신흥시장은 미국의 출구전략으로 금융·외환 시장이 크게 출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 역시 올해 7.8%에서 7.6%로, 인도는 5.6%에서 3.8%로 올해 성장률을 낮춰 잡았다. 중국의 전반적인 성장세 감소 추세는 여타 신흥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 신흥국, 차입여건 악화
IMF는 “미국이 통화정책을 변경할 때 성장과 물가, 금융안정성 등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신흥국은 대외 차입 여건이 악화되고 자본 유입이 감소하는 데 대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세계은행도 동아시아 신흥국들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의 7.8%에서 7.1%로 하향 조정했다. 세계은행은 이 지역의 내년 성장률은 7.2%로 내다봤다. 동아시아 신흥국들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7.5%였다.
세계은행의 분석 역시 중국의 경기 하향 가능성을 반영한 것이다. 세계은행은 중국의 올해 성장률이 7.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올해 초 8.3%에서 크게 하락한 수치다. 세계은행은 또 지난 5월 Fed가 양적완화 축소를 시사한 이후 동아시아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등 부진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악셀 반 트로첸버그 세계은행 동아시아-태평양지역 담당 부총재는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전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하는 중요한 성장엔진”이라며 “신흥국은 지속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빈곤층 축소, 취약계층의 생활 개선 등 경제구조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도 '저성장 늪' 빠지나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IMF는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9%에서 3.7%로 0.2%포인트 낮춰 잡았다. 한국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IMF 등 주요 국제기구의 내년 성장률 전망 평균치를 준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세입 여건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IMF는 그러나 한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2.8%로 유지했다.
한국은행도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 10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연 기자간담회에서 “대내외 경제여건을 감안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7월에 발표한 4.0%보다 0.2%포인트 낮은 3.8%로 수정했다”고 말했다. 한은은 7월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2%포인트 상향 조정한 지 석 달 만에 전망치를 다시 낮췄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2.8%로 3개월 전 전망을 유지했다. 한은이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한 것은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부정적 요인이 커졌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했는데 한국만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특히 신흥국의 성장세 둔화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7월만 해도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신흥국 경제성장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지 않았지만 최근 신흥국의 경기침체 양상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세 차례나 바꿈으로써 중앙은행의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체 분석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IMF만 따라간다는 것이다.
남윤선 한국경제신문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