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에 재닛 옐런 현 부의장(67)이 내정됐다. Fed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의장이 탄생하게 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옐런을 차기 Fed 의장에 공식 지명했다. 옐런이 상원의 인준 절차를 통과하면 내년 1월 말 임기가 끝나는 벤 버냉키 의장의 뒤를 이어 4년간 Fed를 이끈다. Fed 의장 지명권은 대통령에게 있으며, 상원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공식 임명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옐런이 버냉키 의장과 함께 양적완화(채권 매입 프로그램) 정책을 주도해온 만큼 Fed의 현행 경기부양적 금융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히려 채권 매입 규모를 줄이는 속도가 버냉키 의장이 예고한 것보다 더 느려지고 제로 금리(연 0~0.25%) 정책 역시 더 길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매보다 날카로운 비둘기"
옐런은 Fed의 두 가지 정책 목표인 완전 고용과 물가 안정 중에서 고용을 더 중시하는 ‘비둘기파’다. 알프레드 브로더스 전 리치먼드 연방은행 총재는 “옐런은 버냉키보다 더 비둘기파”라고 평했다. 경제 회복과 고용 확대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삼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옐런을 지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옐런은 오바마 대통령의 차선책이었다. 당초 2009~2010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자신을 보좌한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을 지명하려 했으나 야당의 반발에 부닥쳤다. 정치권과 경제학자 사이에서 “서머스는 규제완화로 금융위기를 불러온 장본인인 데다 친(親)월가 인물이어서 안 된다”며 옐런이 적임자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서머스가 시장의 압박에 자진 사퇴하자 금융시장은 반색했다. 이를 지켜본 오바마 대통령이 시장의 기대와 여론을 수용한 것이다.
옐런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매보다 더욱 날카로운 예측 능력을 지닌 비둘기”라고 평했다. 옐런은 호황론이
한창 이어지던 2007년 말 “신용경색 심화와 주택시장 침체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2009년 6월 말엔 “내년 하반기엔 미국 경제의 침체가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엔 대세와 동떨어진 주장으로 비쳐졌지만 결국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Fed 내에선 “옐런과 저녁식사 약속을 잡는 날엔 그와 식사시간 내내 경제학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해야 한다”며 “매우 꼼꼼하고 강단있지만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성격”이라고 평가했다.
# 온화한 카리스마
옐런의 캐릭터는 주로 ‘온화한 카리스마와 명석함’으로 묘사된다. 옐런 부의장의 학창시절 친구들은 그에 대해 “똑똑하지만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옐런 부의장을 아는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건 그가 특이할 정도로 상냥하고 품위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케빈 해셋 미국기업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서머스 앞에서 틀린 말을 한다면 그 자리에서 십중팔구 ‘대학원은 갔느냐’ 또는 ‘경제학 공부는 해봤느냐‘는 면박을 듣는다”이라며 “옐런은 ‘이런 방법으로는 생각해 봤습니까’라고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셋은 “그녀는 합의점을 찾아가는 능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옐런은 1946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유대인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67년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옐런은 1971년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77년 Fed 이코노미스트로 1년간 일하면서 Fed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UC버클리 경영대학원 교수를 지냈고, 1997년부터 2년간 클린턴 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2004년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를 거쳐 2010년 Fed 부의장에 임명됐다.
옐런은 가족도 모두 경제학과 연관돼 있다. 그의 남편은 ‘정보의 비대칭성 연구’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애컬로프 UC버클리대 교수다. 부부의 외아들인 로버트 애컬로프는 현재 영국 워윅대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 과제도 산적…앞길 험난
그러나 Fed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의장에 오르는 옐런의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출구전략을 실행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Fed는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에서 시장의 예상과 달리 월 850억달러 규모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출구전략 시동을 연말 또는 내년 초로 미뤘다. 정치발 경제위기가 지속되면 자칫 버냉키 의장이 떠날 때까지 시작하지 못할 수도 있다. Fed 내에는 양적완화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조기 종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매파’가 적지 않다. 옐런이 통화정책을 둘러싸고 양분돼 있는 Fed를 어떤 리더십으로 이끌지도 관심사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
美중앙은행(Fed)은?…고용·물가안정 '이중책무'
Fed라고 불리는 미국 중앙은행, 즉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913년 설립됐다. 중앙은행 기능이 주별로 흩어져 있어 금융위기가 자주 발생했던 것이 설립 배경이다. 설립 당시 통화정책은 정부가 주도했기 때문에 Fed의 역할은 돈을 찍어내는 일에 불과했다.
Fed의 역할은 1930년대 대공황과 1970년대 오일쇼크를 거치며 확대됐다. 오일쇼크로 물가와 실업률이 함께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미국 의회는 1977년 연방준비은행법을 개정했다. 고용 극대화와 물가 안정을 목표로 적정 수준의 장기 금리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법으로 명시했다.
이때부터 Fed는 고용 극대화와 물가 안정이라는 ‘이중책무(dual mandate)’를 갖게 됐다. 주요국 중앙은행 중 법적으로 이중책무를 가지고 있는 곳은 Fed가 유일하다. 한국은행을 포함한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1980년대 이후 Fed도 사실상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왔다. 경제가 오랜 호황을 누리면서 일자리 창출보다 물가 안정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바뀐 건 2007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실업률이 치솟으면서다. Fed는 통화정책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발표문에 2008년 12월 처음으로 ‘고용 극대화’를 정책 목표로 명시했다.
Fed는 크게 이사회와 FOMC, 12개 도시의 연방준비은행으로 구성된다. Fed 이사회엔 의장과 부의장, 5명의 이사가 있다. FOMC는 Fed 이사회 7명과 연방준비은행 총재 5명이 포함된다. 연방은행 총재 중 뉴욕연방은행 총재직은 당연직 이사로 들어가고, 나머지 4석은 각 연은 총재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