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의 가치는 1억달러다.” 요즘 미국 프로야구계에선 자유계약선수(FA·Free Agent) 자격을 획득한 추신수 선수(32·신시내티팀)의 예상 몸값이 화제를 낳고 있다. 추신수의 협상 대리인인 스콧 보라스는 “6년 정도의 장기계약을 전제로 1억달러를 내야 그를 데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1억달러는 한화로 1000억원을 웃도는 큰 돈이다. ‘추추 트레인’의 몸값이 치솟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FA 덕분이다. 스포츠계에선 ‘FA 경제학’이라는 말이 따로 있을 만큼 FA에는 시장 논리가 살아 숨쉰다.
# 우리는'인센티브'에 반응한다
추신수 얘기를 계속해보자. 그는 올해 ‘20(도루)-20(홈런)-100(득점)-100(볼넷)-300(출루)’을 달성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6명만 이 기록을 냈다. 추신수 자신도 놀란 ‘생산성’이다. 원래 야구 천재여서 잘한다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추신수의 기적 같은 성적의 이면에는 ‘인센티브의 작동’이 숨어 있다. 인센티브는 어떤 행동을 낳는 유발동기다. 높은 생산성을 낳은 유발동기는 바로 FA 자격 획득과 대박 찬스였다. 자유계약 선수가 되면 원소속팀을 포함해 여러 팀과 자유롭게 협상, 몸값을 많이 주는 곳으로 이적할 수 있다. 운동선수의 한계 나이가 대개 30대 중반인 점을 감안하면 FA는 절체절명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괴짜경제학’을 쓴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프너는 “모두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고 말했다. FA를 앞둔 선수들은 신들린 듯이 치고 넣고 달리는 ‘크레이지 모드(Crazy Mode)’로 돌입한다는 게 저자들의 분석이다.
# 계약자유 원칙…'윈-윈'
그렇다고 FA 자격이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FA 선수라고 모두 높은 몸값을 받는 것도 아니다. 꾸준히 잘한 선수만 ‘파티’를 즐길 수 있다. 1999년 FA를 도입한 한국프로야구에서는 9년(9시즌·대학졸업자는 8시즌)을 뛰어야 한다. 타자는 매 시즌 경기 수의 3분의 2 이상 출장해야 하고, 투수는 매 시즌 규정 이닝의 3분의 2 이상 등판해야 한다. 시즌은 1군 등록일수가 150일 이상이어야 인정된다. 까다로운 조건은 더 있다. 1975년 FA를 도입한 미국에선 6시즌이며 조건도 한국과 조금 다르다.
어떤 종목이든 FA 시장에 나온 선수는 철저히 검증된다. 공짜는 절대로 없다. 막대한 돈을 주고 선수를 사가는 구단들은 해당 선수의 수비력, 주력, 공격력, 약점, 장점, 건강이력 등을 샅샅이 뒤진다. 야구에서는 홈런,
삼진, 타점, 희생타 등에 각각 플러스와 마이너스 액수를 부여해 계산하기도 한다. 반짝하고 사라질 선수인지, 장기 계약을 할 만한 선수인지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연봉으로만 100억~300억원대를 지급해야 하는 뛰어난 선수인 경우 검증은 더 까다롭게 진행된다. 물론 FA가 되기 전에 퇴출되는 선수도 부지기수지만.
FA는 종목에 따라 연봉 제한이 있거나 없다. 한국프로농구는 시장이 작아 연봉 총액(샐러리 캡) 제한을 두고 있다. 하지만 야구나 축구는 없다. 미국도 과거에는 제한을 뒀지만 구단과 선수노조의 분쟁, 리그 중단 등이 우여곡절 끝에 없앴다. 선수와 구단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계약을 맺도록 하는 것이 선수, 구단, 팬, 방송 등 모두에게 이롭다는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된 결과다. 구단이 돈을 얼마를 쓰든, 손실이나 이익을 보든, 정부나 프로야구위원회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자유시장 원리도 작용했다.
# 경영의 마술…연봉·구단 가치
미국프로야구의 경우 팀별 FA 선수 영입 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자금력이 뛰어난 팀은 원하는 대로 ‘FA 대어’를 싹쓸이할 수 있다. 한때 뉴욕 양키스 소속 선수 4명의 몸값이 플로리다 말린스 팀 전체 몸값보다 많은 때도 있었다.
그럼 뉴욕 양키스는 과잉 투자를 한 것일까? 미국 경제전문 잡지인 포브스(Forbes)는 “구단의 입장권 판매수익, TV중계권, 스폰서 수입, 각종 상표권료, 주차장 수입, 야구교실, 구장 내 레스토랑 운영, 유니폼 판매 등 모든 형태의 수입(구단 가치)이 연봉 총액보다 높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썼다. x축에 연봉 총액, y축에 구단 가치를 놓고 그래프를 그린 결과 연봉 총액이 늘어날수록 구단 가치 총액도 늘어나는 우상향 직선 그래프가 나타났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 정보 비대칭과 '먹튀'
FA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있다. 장기 계약을 한 선수의 성적이 계약 전보다 나빠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인센티브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많은 생산성 차이를 보인다. 평생 살 수 있는 거액을 손에 쥔 경우 예전 같은 투쟁력이 발휘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먹튀’ 논란이 이는 이유다. 다년계약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보 비대칭 문제도 발생한다. 선수의 건강 문제가 뒤늦게 나타나는 경우다. 선수는 자기 몸상태를 잘 안다. 반면 구단은 선수만큼 알 수 없다. 반대로 구단이 연봉 협상에 사용한 데이터가 어떤 데이터인지 선수가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양쪽 모두에게 리스크는 존재한다. 이 모든 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제3자는 팬이다. 팬들은 좋은 경기를 안하는 선수와 팀은 외면할 것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영화 '머니볼'…최저 연봉팀이 20연승
FA 시장에서 뉴욕 양키스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극적으로 대비된다. 미국야구의 대표 브랜드 격인 뉴욕 양키스는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FA 시장에 나온 스타 선수들을 대거 영입한다. 반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전혀 다른 전략을 쓴다. “고액 연봉 선수만 야구를 잘하는 게 아니다. 싸구려 선수 중에서도 좋은 플레이어는 있다”는 게 이 팀의 철학이다.
얼마 전 상영된 영화 ‘머니볼’은 바로 꼴찌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해 인기를 모았다. 남자배우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이 영화는 애슬레틱스 단장인 빌리 빈(브래드 피드가 연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빌리 빈은 2002년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팀을 정비하려 했다. 몸값이 비싼 선수를 팔고 가능성 있으면서도 몸값이 싼 선수를 대거 영입했다. 구단이 가난한 이유도 있었다. 여기에 경제학도가 등장한다. 기존 참모진은 기존 방식대로 고참 및 거액 선수 잔류를 고집했다. 하지만 예일대 출신인 경제학도 피터는 고참을 대신할 선수를 철저한 데이터 분석으로 영입, 빌리 빈과 함께 팀을 재구축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2002년 시즌에 팀은 20연승을 거두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양키스 연봉 총액의 3분의 1도 안 되는 팀이 일을 낸 것이다.
시사점은 경영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선수들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달라진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양키스가 애슬레틱스보다 자주 우승했다는 점이다.
▨ 논술 포인트 스포츠 경제·경영학이 요즘 뜨고 있다. 어떤 팀은 투자를 많이 하고 어떤 팀은 적게 한다. 투자와 성적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FA 시장에서 적용되는 경제원리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보고 토론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