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오버 슈팅' 경계할 때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매년 10월이면 대부분 기업은 다음해 사업환경 전망을 토대로 경영전략을 구상하거나 짠다. 가장 신경 쓰는 변수는 환율이다. 시기적으로 민감한 때에 원·달러 환율이 1070원 내외로 떨어짐에 따라 기업들이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하락할 것인가 하는 점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주된 요인은 대규모 외국 자금 유입이다. 지난 한 달간 들어온 돈만 10조원어치에 달했다. 출구전략 추진 가능성이 제기된 이후 한국과 같은 신흥국의 외자 유출입은 ‘외화 캐시 플로(cash-flow)’, 즉 스톡 면에서 외환보유액, 플로 면에서 경상수지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특히 후자가 더 중시된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외화와 경상수지를 감안해 신흥국을 분류하면, 두 지표에 문제가 없는 ‘캐시 플로 건전국’으로 한국과 멕시코 대만 중국 등이 꼽힌다. 이미 위기 조짐이 일고 있는 인도와 인도네시아 태국 터키 등은 ‘캐시 플로 불건전국’으로 지목된다. 브라질 필리핀 등은 두 국가군의 중간 단계로 위기가 발생하면 전염될 우려가 있는 ‘캐시 플로 중립국’으로 불린다.
앞으로 출구전략이 추진된다고 해서 투자 가용자금이 곧바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금과 미국 국채, 일부 신흥국에서 이탈한 자금과 국채(또는 주택저당증권) 매입 규모를 축소한다고 하더라도 미국 중앙은행(Fed)이 제공하는 본원통화는 나오기 때문이다. 현금 보유 성향이 높아져 시중자금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자금의 속성상 어디론가 투자된다.
세 가지 자금 흐름이 예상된다. 이미 안전 선호 자금은 미국 등 선진국으로 제자리를 찾고 있다. 출구전략 피해가 적고 갈수록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프런티어마켓에는 고위험·고수익 추구 자금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중위험·중수익 추구 자금은 캐시 플로가 건전한 한국과 같은 신흥국에 머물거나 새로 유입되고 있다.
캐시 플로 건전 신흥국에 안전 지향 자금이 들어와 주가가 올라가고 통화 가치가 절상되면 진정한 의미의 차별화다. 하지만 펀더멘털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차별화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통화 가치가 절상돼 경기가 침체하면 거품 발생이 촉진돼 나중에 자금이 빠지는 과정에서 더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이때 외자 유입에 따른 주가와 통화 가치 상승은 차별화가 아니라 착시현상이자 ‘안전통화 저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안전통화 저주’란 베리 아이켄그린 미국 UC버클리 교수가 처음 내놓은 용어다. 통화 가치는 교역국과의 교환 비율이기 때문에 경제 여건에 비해 고평가되면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만큼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난다는 의미에서다.
출구전략 추진 전후 글로벌 자금 흐름에 캐시 플로가 중시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적정 이상의 외화보유,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상대적으로 건전한 재정수지 등으로 인해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가가 오르고 기대까지 겹치고 있다. ‘신흥국과는 다르다’는 차별화 주장이 의외로 큰 공감대를 이루면서 마치 한국 경제가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인식된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 자금은 다른 신흥국에 투자됐던 캐리(carry) 자금의 피난처와 핫머니 성격이 짙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포인트 이상의 ‘디플레이션 갭’이 발생할 만큼 완전하지 못하다. 8일에 발표될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경제 전망에서도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내려 잡았다.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다른 예측기관도 마찬가지다.
그런 만큼 외자 유입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자의 대처 방안으로 종전의 △유입 외자를 사들이는 태화 개입 △유입 외자를 사들이되 국내 여신을 흡수하는 불태화 개입 등이 있다. 하지만 올해 세계 경제 전망보고서에서 신흥국의 외국자금 이탈과 환율방어책으로 권고한 ‘영구적 불태화 개입(PSI)’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PSI란 국부펀드나 내국인을 권유해 유입한 외자만큼 해외 자산을 사들이고, 외자가 이탈할 때는 이 자산을 들여오는 방안이다. 이 경우 외자 유출입에 따른 환율 급등락을 방지해 금융시장의 착시와 교란을 방지할 수 있다. 페이-고(pay-go), 간지언,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재정중화정책(FSP) 등과 함께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적합한 제3의 정책 대안이다.
기업들은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에 크게 당황할 필요가 없다. 환율구조와 수출채산성 모델 등을 통해 추정된 원·달러 환율의 적정 수준은 1070원 내외로 나온다. 교역국 통화 가치와의 교환 비율인 환율이 적정 수준에서 상하로 50원 범위 대에서 움직이는 것은 정상적인 흐름이다. 그 범위 대에서 이탈한 것은 ‘위험 지대(오버 또는 언더슈팅)’로 곧 돌아온다.
환율은 적정 수준 밑까지 떨어지면 다시 올라가고, 적정 수준을 웃돌면 추후 낮아진다고 보는 게 무난할 것이다. 문제는 환율이 떨어지면 더 떨어지고, 반대로 환율이 오르면 더 올라간다고 보는 순응성 예측이다. 펀더멘털이 개선되면 그만큼 적정 수준을 낮춰서 봐야 한다. 내년에는 환율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환위험 관리를 잘해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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