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한문 역사 음악 등 많은 분야를 알아야 할 수 있는 종합예술입니다. 하지만 소리꾼들은 지금껏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능력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했어요. 판소리 박사과정을 이수해서 소리꾼의 위상을 높이고 싶었습니다.”
오는 29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무대에서 완창 판소리 ‘흥보가’를 선보이는 권하경 명창(45·사진)은 판소리를 전공한 박사다. 그는 2010년 ‘심청가 설음조 연구’를 주제로 이화여대에서 한국음악 박사 학위를 받았다. 1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이론과 실기를 겸한 소리꾼이 되고 싶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박사과정을 밟았다”고 설명했다.
완창 판소리는 소리꾼이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춰 판소리 한 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것으로 짧게는 3시간, 길게는 8시간까지 공연이 펼쳐진다. 긴 시간 때문에 소리꾼은 물론이고 관객에게도 쉽지 않은 공연. 1985년 시작해 올해 29년째 상설 공연으로 이어지고 있는 국립극장의 완창 판소리는 소리꾼이라면 누구든 한번쯤 서보고 싶어하는 유서 깊은 무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이자 1992년부터 10년간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활동한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국립극장의 완창 판소리 무대에 선다. 그는 “삶의 희로애락을 극적으로 잘 녹여내 관객에게 감동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남 담양이 고향인 그는 다섯 살 때부터 판소리 ‘심청가’, ‘경기민요’, ‘진도아리랑’ 등을 따라 부르며 소리를 익히다 광주의 안채봉 명창을 사사하면서 본격적으로 판소리에 입문했다. 조상현·성우향·김일구·조통달·안숙선·박송희 명창 등 이름난 명창들에게 판소리 5바탕(심청가·춘향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을 배웠고 모두 완창했다.
호기 넘치고 강건한 소리를 낸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이번 무대에서 3시간 동안 ‘흥보가’를 완창한다. 2시간30분은 ‘흥보가’를 나머지 30분은 ‘놀보가’를 부른다. 그는 “원래 ‘흥보가’의 한 부분이던 ‘놀보가’는 판소리에 나오는 각설이, 사당패 등 남도잡가가 잡스럽다는 이유로 부르지 않아 거의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다”며 “박송희 선생님이 복원한 ‘놀보가’를 배워 이번 무대에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흥보가’는 남자의 설움을 이야기하는 선이 굵은 작품이다. 다른 판소리 마당에 비해 뱃속에서 바로 뽑아내는 통성과 남자들만 낼 수 있는 저음인 하탁성을 써 소리가 굵고 강건하며 담백한 게 매력”이라며 “흰백지에 한일(一)자만 그려도 인생이 보이는 판소리를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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