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줄임말은 언어의 진화일까, 퇴화일까? 이에 대해 생글기자들이 찬반 토론을 벌였다. 축약어 사용에 찬성하는 측은 “언어도 시대에 따라 없어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한다”는 진화론에 무게를, 반대하는 측은 “축약어는 세대 간 단절과 글을 통한 인격표현을 왜곡한다”며 퇴화론을 주장했다. 찬반 베틀 속으로 들어가 보자.
축약어 찬성
언어도 시대따라 진화…자연스런 현상으로 봐야
인터넷 통신언어는 대다수의 사용자들이 이해할 수 있고 일상적으로 쓰이는 사회적 방언으로 자리 잡았다. 일각에서는 통신 언어의 확산이 세대 간 단절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하면서 심지어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일고 있다. 그러나 세대 간 의사소통의 주된 방해요인은 통신언어가 아닌 점, 통신언어의 효용성을 고려하면 기우에 불과하다.
물론 현재에도 통신어의 사용은 세대적 차이가 있다. 또한 40대 이상의 연령층의 통신언어 사용 빈도는 20~30대 젊은 층에 비해 뒤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신언어가 세대 간 소통 단절의 주범이란 해석은 무리가 있다. 실제로 현재 40~50대 네티즌들은 1990년대 대학생 혹은 젊은 직장인으로서 PC통신 및 인터넷 사용을 주도했던 터라 통신언어 사용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 또한 다른 SNS에 비해 30대 이상 사용자 비율이 높은 트위터에서, 기성세대 네티즌들이 기존 통신언어를 응용해 새로운 표현을 유행시키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는 기성세대도 이제는 통신언어를 이해하며 쓸 능력이 충분하지만 통신언어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그들의 의사소통이 주로 정확한 의사전달을 요하는 정보 공유, 토론에 있기 때문에 통신언어를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상 50대 이하의 세대는 언어 사용 측면에서 동질적인 집단인 것이다. 게다가 2007년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실시한 정보문화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632명의 50대 이상의 장 노년층 중에 통신언어를 사용한 대화체를 절반 이상 이해한 비율이 무려 58.4%나 됐다. 즉 장·노년층과의 소통에 통신언어가 가져오는 단절과 괴리감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세대 간 의사소통의 주된 원인은 세대 간 상이한 가치관적인 측면과,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태도적 측면에 있다. 우선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는 60년간 농경사회부터 정보화 사회까지 발전해 왔으므로 사회 전반적으로 상이한 가치관들이 혼재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정적인 태도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주입시키려 한다면 소통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2011년 트윗애드온즈 사이트를 통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대부터 60대까지 ‘소통 태도’를 세대 간 의사소통에서 가장 부정적인 요인으로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전반적인 결과를 보더라도 소통태도(40%), 부정적 표현(27%), 통신 언어(19%) 순으로 응답률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의사소통 당사자들이 갖고 있는 주된 애로사항은 소통 태도, 부정적 표현에 있다.
그렇다면 통신언어의 사용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선 우선 통신언어의 등장이 경제적 동기에 의해 변화한 기존 국어의 특성과 상통한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두 글자로 줄여 소련이라 축약됐다. 또 우리가 자주 접하는 2음절 한자어 중에도 축약어가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를테면 경제라는 단어는 원래 경세제민을 줄인 것이며, 안보는 안전보장의 준말이다.
그러므로 통신언어는 국어가 정보화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 과정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통신언어는 비언어적 표현으로만 여겨지던 이모티콘을 언어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기존 국어로는 한계가 있는 영역까지 묘사할 수 있게 됐다.
축약어 반대
축약어가 습관화되면 인격·소통 모두 왜곡시켜
언어의 경제성이라는 측면에서 축약어 사용은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축약어가 과연 우리의 인격을 향상시켜주는 언어라고 볼 수 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질문을 받고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한국어뿐만이 아니라 영어에서도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거나 어른에게 말을 할 때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장보다 길게 말하는 경우가 많으며 축약어를 사용하지 않고 말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우리가 축약어를 SNS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까지 자주 사용한다면 위의 같은 상황에서도 습관처럼 축약어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이 우리의 인격을 낮게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언어란 자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다. 누군가는 축약어의 사용을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누군가 축약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의 인격을 낮게 평가할 것이다. 언어의 경제성을 축약어의 사용으로 악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축약어를 사용하는 습관을 줄여 언어의 사용으로 자신의 인격을 높여보는 것이 어떨까.
왜 청소년들은 축약어를 사용할까? 그들은 ‘채팅할 때 편리하다’, ‘또래들끼리만 쓰는지라 재미있다’ 등의 이유를 말한다. N세대 언어라는 별명이 붙은 그들의 언어는 이제 누군가가 그 의미를 설명해주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은어의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 때문에 기성세대인 부모들은 소외감을 느끼며 신세대인 자녀들과 매끄럽게 대화를 이끌어나가지 못한다. 몇 년 전까지 모TV 프로그램에서는 ‘어른이 모르는 10대의 말’이라는 주제로 방송을 진행했었다. 10대들의 언어가 기성세대의 언어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에 진행될 수 있었던 방송이었다.
사람은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교신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 중에서도 소통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하지만 이러한 소통의 틀의 뒤틀리고 있다.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서로 같은 한글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외국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처럼 사전을 찾고 뜻을 이해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시작은 축약어의 사용으로 인한 세대 간의 소통 불가 및 단절일 수 있으나 이 상황이 계속 지속된다면 문화, 가치, 행동, 의식 등 모든 것이 달라질 수도 있다.
공산화되는 시대상황을 날카롭게 풍자했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는 ‘신어사전’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신어사전’이란,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안 삶’으로 바꾸는 것처럼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휘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시작된 것이다. ‘신어사전’ 계획에 참여한, 주인공 윈스턴의 친구 중 하나는 신어 사전에 대해 ‘대단한 계획’이라며 극찬했다. 이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휘를 줄임으로써 사람들의 생각을 단순화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청소년들이 일상 속에서 친구나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줄임말을 사용하는 것을 소설 속 절대 공산주의 국가의 우민화 정책과 같다고 하는 것은 과한 비판일 것이다. 그러나 ‘신어사전’ 계획의 목표에 대해 주목해 보자. 조지 오웰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휘가 줄어드는 것은 그들의 사고능력을 떨어뜨린다고 보았다. 한 대학교 입학사정관은 자기소개서에도 인터넷 축약어 사용, 이모티콘 사용 등을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며 “청소년들은 축약어를 쓰면서 똑 같은 표현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고, 이처럼 축약어 사용은 그들의 표현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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