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추적 - 한국, 車생산 세계 5위 '흔들'
佛 노동유연성 OECD 30개국 중 26위
뒤늦게 임금 축소 등 유연성 높인 노동법 통과
美·日 자국생산 확대…韓, 인도에 추월당할 판
프랑스 최대 자동차 제조사인 푸조-시트로앵은 과잉 상태의 생산설비를 해소하기 위해 3000여명이 일하고 있는 파리 인근의 오네-수부아 공장을 내년에 폐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프랑스 내 연구개발(R&D) 시설 한 곳도 폐쇄키로 하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흔히 프랑스는 르노와 푸조-시트로앵 브랜드를 가진 자동차 강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자국 내 자동차산업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하향세다. 한때 세계 4위권 자동차 생산국이었으나 지난해 태국에 10위 자리를 내주고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유럽 경기 침체로 인한 핵심 시장의 판매 둔화가 영향을 미쳤지만 본질적으론 프랑스 특유의 경직된 고용 제도와 노동 환경, 그리고 강성 노조가 자동차산업의 체질을 약화시켰다는 분석이 많다. 강성 노조와 낮은 노동생산성 등의 문제로 국내 생산량이 줄고 있는 한국으로선 남의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10위 밖으로 밀려난 프랑스
프랑스는 노동시장이 경직된 대표적 선진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30개 회원국 가운데 프랑스의 고용유연성은 26위로 사실상 꼴찌다. 정규직은 물론 비정규직과 파견직도 해고하기 어렵고 법정 근무시간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자동차 회사들은 이 때문에 경기 변화에 대응해 생산 물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기 어렵고 그만큼 경쟁력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조철 한국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자동차 수요는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생산량을 융통성 있게 조절해야 하지만 프랑스는 강성 노조와 야당 등의 반발에 부딪혀 이를 개선하지 못했고 결국 자국 내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정부는 결국 지난 5월 새로운 노동법을 통과시켰다. 고용주가 경영상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고 노동시간과 임금도 줄일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자동차산업의 위기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을 더 이상 나몰라라 할 수 없어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인 것이다.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한국도 노동유연성만 높이면 현재 생산설비로 생산량을 최대 2.5배까지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해외 공장보다 낮은 생산성과 강성 노조의 특근 거부, 파업과 같은 지금의 난맥상이 이어진다면 프랑스의 전철을 밟을 위험이 크다”고 꼬집었다.
◆미국 일본도 생산량 늘어나는데
한국 자동차산업은 생산량 기준으로 2005년 세계 5위로 발돋움한 뒤 줄곧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앞으로 1~2년 뒤면 인도에 5위 자리를 뺏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신정관 KB투자증권 리서치센터 팀장은 “인도는 12억명에 달하는 인구에다 30세 이하 인구 비중이 60%에 달해 자동차산업 성장 전망이 밝다”며 “경기 침체로 주춤하는 가운데서도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1년 70만대의 격차를 보였던 한국(466만대)과 인도(394만대)의 자동차 생산량은 지난해 40만대까지 줄었다. 올해는 한국 내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이 확실한 상황이어서 격차는 더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차의 올 상반기 국내 공장 생산량은 173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184만대)보다 11만대 감소했고 쌍용차를 제외한 한국GM과 르노삼성의 생산량도 줄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대차 노조가 이달 말 파업을 강행할 예정이어서 추가 생산 차질도 우려된다. 윤여철 현대차 노무담당 부회장은 앞서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노조가 파업을 벌이면 국내 생산 대신 해외 생산을 늘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미국과 일본 등 자동차 선진국들은 노사 협력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자국 내 생산량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생산량 1000만대 고지를 넘어섰고 일본도 994만대를 생산해 1000만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두 나라 모두 2011년보다 생산량이 100만대 이상 늘었다.
유지수 국민대 총장은 “현대·기아차가 20년 넘게 반복하고 있는 파업 행보는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며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자동차산업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협력적인 노사관계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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