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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은행가는 미워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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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중개로 경제 뒷받침하는 은행
문제는 사람…역할을 폄하해선 안돼

윤용로 < 외환은행장 yryun@keb.co.kr >



2010년에 ‘슈퍼배드’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루라는 악당이 달을 훔치려는 계획을 가지고 벌이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영화에서는 악당이 ‘악(惡)의 은행(Bank of Evil)’에 돈을 빌리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필자가 그것을 특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 은행 간판에 ‘구(舊) 리먼 브러더스(Formerly Lehman Brothers)’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리먼 브러더스는 2008년 9월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됐던 미국의 투자은행이다. 금융산업에 대한 미국인의 불신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게 하는 장면이었다.

세계적 홍보회사인 에델만의 조사결과를 보면, 미국의 경우 2008년 71%에서 2011년 25%로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년에는 49%로 다소 회복되었으나 아직도 고객의 절반 이상이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유로존의 모범생인 독일에서조차도 신뢰한다는 응답이 23%에 불과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뢰도가 2008년 67%에서 금년에는 54%로 하락했다.

이러한 신뢰도 하락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금융산업 스스로에 있다. 2000년 이후 국내 은행의 대출 규모는 세 배 이상 증가했고 이에 따라 이익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성장에 걸맞은 생산성 향상을 이루지 못하면서 최근에는 수익성이 악화되고 부실요인은 증가하는 등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더욱이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면서 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들은 신뢰 상실이라는 커다란 위기 앞에 서게 된 것이다.

금융회사의 기본 기능은 자금의 원활한 중개를 통해 국민경제 발전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회사의 신뢰 회복을 위한 첫걸음도 이런 기본에 충실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월가의 속담 중에 “은행가는 미워해도 은행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은행산업의 종사자들에게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은행의 역할까지 폄하해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금융의 자금중개 기능이 저하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엄중한 감시, 질책과 아울러 애정도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연유다.

올 추석에는 ‘슈퍼배드 2’가 개봉된다고 한다. 금융에 대한 미국인들의 감정이 또 어떻게 변했는지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윤용로 < 외환은행장 yryun@ke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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