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OEM·ODM 수출…점유율 30~45%로 세계 1위
자전거용 '물주머니 배낭' 히트…미군용 배낭도 8년간 공급
한 회사에 매출 20%만 거래…물량 빼더라도 생산타격 안받아
다음 성장동력은 유아용품…기저귀가방·아기띠 시장 진출…올해 美·유럽 등 공략 계획
미국의 블랙다이아몬드와 켈티 카멜백 그레고리, 캐나다의 아크테릭스, 스위스 마무트, 일본 몽벨 등 해외 최고급 아웃도어 브랜드 등산배낭을 만드는 회사가 한국에 있다. 경기 김포시에 있는 동인기연이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회사지만 해외 유명브랜드 업체들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회사 설립 후 20여년간 자체상표 없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과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수출만 고집했던 회사다. 처음엔 바이어들을 찾아다니며 미국과 유럽을 돌아다녔지만, 지금은 이들 업체가 먼저 동인기연을 찾아온다고 한다.
○프레임 제조능력 인정받아
정인수 동인기연 사장(58)은 1992년 동인기연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배낭 받침대용 알루미늄 튜브와 알루미늄 압출형재부품을 가공하는 일을 했다. 1996년 미국 켈티사의 유아용배낭(베이비캐리어) 알루미늄 프레임을 개발해 공급했는데, 프레임 제조능력을 눈여겨 본 켈티사는 프레임뿐만 아니라 배낭봉제도 해줄 것을 권유했다.
정 사장은 “이왕 만드는 것이라면 평범한 등산배낭이 아닌 전문가용 고급 배낭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켈티의 설계도면과 기술을 받아 고급 등산배낭을 본격 제작해 공급하기 시작했다. 알루미늄 가공보다 봉제 매출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동인기연이 입소문을 타자 미국의 유명브랜드 회사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1998년 카멜백이 설계도를 들고 와 물을 넣어 마실 수 있는 물주머니가 달린 자전거용 ‘하이드레이션 배낭’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정 사장은 카멜백의 설계도대로 물을 넣으면 수납공간이 부족해진다는 점을 감안, 이를 보완해 독자적인 3차원 형태 물주머니 배낭을 만들었다.
이 제품이 히트를 쳤다. 첫해 5만달러였던 카멜백과의 거래량이 100만달러, 500만달러로 늘었다. 올해는 카멜백으로부터 2200만달러어치의 물량을 확보했다.
최고급 아웃도어용품 회사인 블랙다이아몬드와도 2002년부터 등산배낭을 비롯해 안전장비인 하네스(암벽 등반 시 안전장비를 거는 등산용 벨트)를 독점 계약, 2000만달러어치를 공급하고 있다. 이 두 회사를 통한 매출은 각각 20%씩 회사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미군 배낭도 납품
동인기연의 주력 수출 상품인 산악전문가용 고급 하이테크 등산배낭은 제품 한 개 가격이 70만~80만원 정도다. 알루미늄과 플라스틱, 봉제를 융합해 만든 제품으로 연간 500여만개를 생산한다. 세계 배낭 ODM시장에서 동인기연의 점유율은 30~45%로 1위다. 지난해 매출은 1353억원을 기록했다.
정 사장은 특정 업체와의 거래 비중을 지나치게 많이 가져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어떤 바이어와도 거래량을 매출액의 20% 이상 잡지 않는다”며 “한 업체가 한번에 물량을 다 빼더라도 전체 생산에 타격을 받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스위스 마무트사에 공급하는 배낭을 들고 나와 한번 메보라고 했다. 묵직했지만 어깨와 허리에 가방이 ‘착’하고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에만 힘이 들어가지 않고 허리와 등 전체에 힘이 분산됐다. 배낭을 메고 걸을 때마다 벨트와 어깨끈이 돌아갔다.
정 사장은 “가방이 몸에 고정돼 있는 것보다 회전해야 자연스럽게 허리와 어깨가 돌아가면서 걸을 때 피로를 줄여준다”고 말했다.
동인기연은 2001년 카멜백으로부터 미군용 배낭 제작을 의뢰받아 2003년부터 8년 동안 납품하기도 했다. 개당 250달러였던 이 배낭을 멘 미군이 이라크를 비롯해 해외 작전지역에 투입됐다. 각종 뉴스와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동인기연이 만든 군용가방이 전 세계에 노출됐다.
정 사장은 “우리가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직원들의 땀방울이 맺힌 가방이 세계 곳곳에서 보여질 때마다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성공 비결은 세 가지
세계적인 등산가방 브랜드 기업들이 동인기연을 찾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첫째, 핵심 공정은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되 해외 공장의 생산기술을 철저하게 관리한다는 점이다. 디자인과 기능이 빠르게 변하는 등산배낭 제작을 협력업체에 처음부터 맡기면 개발과 생산에 들어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좋은 품질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공장에서 직원 100여명이 제품 디자인과 알루미늄 자동생산, 금형개발을 맡고 있다. 필리핀 6개 공장과 베트남 1개 공장에선 9000명의 현지 직원들이 제품 봉제 및 알루미늄 후가공만 맡고 있다. 정 사장은 “동인기연만의 제조시스템과 기술을 현지 공장인력에 전수하고 상당한 제조 권한도 줬다”며 “필리핀 공장은 해외 바이어들의 지시사항을 바로 반영할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둘째, 강력한 자체검증 검사시스템이다. 정 사장은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중공업에서 10년간 컨테이너선 엔진룸 설계와 기술영업분야에서 일했다. 컨테이너선 같은 대형 선박은 워낙 크기 때문에 제조 및 설비 장착까지 모두 블록 단위로 이뤄진다. 각 블록을 품질관리시스템으로 검사한 후 조립해 건조한다. 이때 배운 품질관리 노하우를 회사에도 적용했다.
동인기연은 가방 머리부분과 배낭 앞판, 옆판 등 봉제과정마다 검사관을 두고 있다. 한 개 라인에 10명이 검사한다. 이들이 합격시켜주지 않으면 다음 공정으로 이동하지 못한다. 해외 8000명 직원 중 10%인 800명이 검사관이다. 제품 완성 후에도 최종검사가 이어진다. 정 사장은 “불량률이 0.03%로 사실상 제로 수준”이라며 “이런 공정과정 때문에 해외기업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셋째, 좋은 소재를 쓴다. 정 사장은 봉제 원재료인 실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다. 싼 실을 쓰면 제품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캐나다 아크테릭스 같은 회사는 배낭 하나도 엄청난 테스트를 거친 뒤 시장에 내놓는다”며 “사소한 것으로 기만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미래 사업은 ‘유아용품’
정 사장은 다음 사업으로 유아용품을 선택했다. 2006년 국내 브랜드 ‘포브’를 만들어 국내 유아용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유아용 카시트, 기저귀가방, 아기띠 등을 주로 만들고 있다. 기저귀 가방은 전문 봉제기업답게 품질이나 수납 디자인 등이 등산배낭 못지않게 견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6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정 사장은 “지난해 동인기연이 큰 아픔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작년 11월 그레고리 제품을 만들던 필리핀 공장 한 곳에 불이 나 40억원어치의 시설이 잿더미가 됐다. 주위에선 재가동까지 6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동인기연은 필리핀 직원들이 휴일까지 반납해가며 준비한 결과 13일 만에 새 설비를 들여놨다. 한 달째 되던 날부터 봉제를 다시 시작했다. 정 사장은 “아픔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게 자랑스러웠다”며 “새로운 도전에 앞서 ‘위기가 왔을 때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의 선택을 하자’는 신념을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포=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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