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불안이 실물경기에 부정적 영향 우려
외국인 자금 썰물처럼 빠질땐 큰 충격
한국 금융시장 안정, 美 경기회복이 관건
미국의 출구전략이 가시화하면서 주식·채권·원화 값이 동반 급락하는 등 국내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11개월 만에 최저인 1850선대로 주저앉았고 원·달러 환율도 1140원 위로 치솟았다. 지난해 9월 미국 3차 양적완화(QE) 이후 펼쳐진 ‘안도랠리’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당분간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금융 불안이 실물경기에까지 영향을 줄 경우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버냉키 쇼크 금융시장 강타
‘예고된 충격’이었지만 ‘버냉키 쇼크’의 영향력은 컸다. 20일 코스피지수는 37.82포인트(2.0%) 급락한 1850.49에 마감,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외국인이 4600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주가를 끌어내렸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 총재(Fed)가 하반기 양적완화 정책 종료를 시사한 탓이다.
국고채 금리도 연중 최고까지 치솟았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연 2.94%로 전일보다 0.13%포인트 급등했다. 외국인에다 국내 채권 투자자들까지 서둘러 손절매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신동준 동부증권 투자전략본부장은 “1년 뒤 양적완화가 종료되고 향후 미 국채 금리 상승도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주식과 채권 모두 매도세가 강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7월26일(1146원90전) 이후 최고인 1145원70전에 마감했다.
○자금 유출 불가피
미국 출구전략이 구체화하면서 외국인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적완화로 값 싼 달러를 빌려 신흥국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한 자금들이 자산을 팔고 떠나는 것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사는 “양적완화 축소는 달러캐리트레이드 회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국 등 이머징시장에 주는 충격은 상대적으로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세 차례에 걸친 미국 양적완화 기간 중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42조8000억원, 채권을 28조8000억원어치 사들였다. 작년 9월 3차 양적완화 이후 5월 말까지도 주식을 4000억원, 채권을 11조700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상재 현대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양적완화로 유입된 자금이 얼마나 빠져 나갈지는 현재로선 알수 없지만 유동성 축소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양적완화 조기 축소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외국인은 이달 들어 지난 19일까지 주식(5조5000억원)과 채권(3조8000억원)을 대거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과 채권을 팔고 나가면 달러 환전 수요를 유발해 원·달러 환율도 큰 폭으로 뛰게 된다. 최근 10일간 원·달러 환율은 30원 가까이 급등했다.
○미국 경기 회복 여부 촉각
국내 금융시장의 흐름은 하반기 미국 경기회복 여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미국 민간부문 경기 회복에 바탕을 둔 양적완화 축소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로드맵을 제시한 건 자산 시장의 과열을 막고,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정상적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2004년 미 출구 전략의 사례를 들고 있다. 미 중앙은행은 2004년 4월 1%인 정책금리를 2006년 6월 5.25%까지 올렸다. 당시 전 세계 주식시장은 5개월간 7.5% 하락했지만 한국은 25%나 급락했다.
이상재 투자전략부장은 “연초 이후 아시아 여타 증시가 오르는 동안 우리 시장이 못 오른 걸 감안하면 낙폭은 2004년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4분기 이후에는 외국인 선호 시장으로 재차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유출된 자금이 한국으로 재유입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 주식이나 채권이 저평가된 상태이고 경제 펀더멘털도 상대적으로 낫기 때문이다. 한국은 5월까지 15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왔고 외환보유액도 사상 최대 수준인 3300억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미국 경기가 기대만큼 회복되지 않을 경우 금융 위기로 번질 최악의 상황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수출 부진으로 국내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서정환/조귀동 기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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