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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다뉴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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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나, 괴로움에 허덕이는 그대를 보았노라. 나, 젊고도 향기로운 그대를 보았노라. 마치 광맥에서 빛을 발하는 황금과도 같이. 거기에 진실은 자란다. 도나우 강가에.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가에.’

이 시의 감흥에서 탄생한 곡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1867)이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7주 만에 참패하는 바람에 극도로 위축돼 있었다. 패전 후의 우울을 달래줄 곡을 부탁받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오스트리아의 젖줄을 노래한 이 시에서 영감을 얻어 세기의 명곡을 완성했다. 원래는 남성합창이 들어간 곡이었는데, 1867년 2월 초연 때 반응은 영 신통찮았다. 그해 여름 파리에서 합창을 뺀 순수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대성공을 거둔 뒤 이 곡은 오스트리아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그 유명한 빈 필의 신년음악회에서도 꼭 연주된다.

‘왈츠의 왕’을 낳은 이 ‘아름답고 푸른’ 강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도나우로 불리지만 나라별로 이름이 제각각이다. 체코어로 두나이, 헝가리어로 두나, 세르비아어·불가리아어로 두나브, 루마니아어로 두너레아…. 모두 라틴어 두나비우스에서 유래했다. 국제적으론 영어 이름 다뉴브로 통칭된다.

볼가강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2860㎞의 이 강은 안단티노의 길고 느린 서곡처럼 유유하게 흐른다. 때로는 잔물결이 찰랑이는 현의 울림으로, D장조의 희망적인 리듬으로 물결치다가 장중하고 힘찬 물굽이로 대미를 장식한다. 독일 알프스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 불가리아를 적신 뒤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의 황금삼각주를 껴안으며 흑해로 흘러든다.

이 강은 오랫동안 동서 유럽을 잇는 문화의 젖줄이자 교역의 대동맥이었다. 훈족과 이슬람, 몽골, 오스만 튀르크의 침략으로 ‘붉은 강’이 된 때도 있었다. 세계 1, 2차 대전의 참상과 공산화의 격랑, 발칸반도의 비극까지 지켜봤다. 몇 년 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이어 최근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에 가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이 강을 젖줄로 삼는 나라들은 새로운 번영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열흘간의 폭우로 강이 범람해 벌써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500년 만의 최고수위를 기록했고, 헝가리에선 700㎞ 이상의 강변에 임시제방을 쌓느라 죄수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모든 강의 여왕’으로 불리는 다뉴브도 하늘이 뚫리는 집중호우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모양이다. 이 지역 국가들이 매년 기리는 ‘다뉴브강의 날’(6월29일) 축제를 앞두고 닥친 재난이어서 더 안타깝다. 빈~흑해 유람선 여행을 신청한 관광객도 부쩍 늘었다는데….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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