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들이 조세피난처에서 운영하고 있는 종속법인 10곳 중 8곳 이상이 해운업과 관련된 특수목적법인(SPC)인 것으로 나타났다. 탈세를 위한 페이퍼컴퍼니(서류상의 회사)가 아니라 실제 사업을 위한 법인이라는 얘기다.
기업 경영평가업체 CEO스코어는 국내 16개 대기업 그룹이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종속법인 281개 가운데 84.7%가 정상적인 해운업을 위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4일 발표했다. 선박금융 224개(79.7%) 및 해양운송 14개(5.0%)로 해운업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종속법인이 해운업에 집중된 것은 해운사들이 선박을 건조하거나 빌릴 때 SPC를 활용하는 게 관행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선박 건조 등에는 금융회사 자금, 즉 선박금융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금융회사들은 해운사가 부도나더라도 투자한 배에 대한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SPC를 만들도록 한다. 해운사에 직접 돈을 주지 않고 SPC에 투자하는 형식을 취해 일정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운송을 맡기는 해외 고객들이 행정 편의 등을 이유로 조세피난처에 있는 법인 소유 선박을 요구하는 사례도 많다.
실제 해운사를 가진 STX그룹은 선박 관련 SPC가 94개였으며, 한진그룹과 SK그룹도 각각 79개와 59개에 달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배 한 척에 SPC 한 개를 만드는 게 일반적”이라며 “탈세와 연관시키는 것은 해운업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또 국내 대기업들이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법인의 85.8%가 ‘화이트리스트’로 분류된 파나마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파나마는 대표적인 조세회피 지역이었지만 지난해 1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블랙리스트에서 이름이 빠졌다. 대신 ‘국제적으로 합의된 세금 표준을 구현하는 국가’를 가리키는 화이트리스트에 올랐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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