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 권리찾기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3월 취임하며 내놓은 첫 약속은 “‘국민검사청구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금융회사의 위법·부당한 업무처리가 발생하면 200명 이상의 당사자가 직접 금감원에 검사를 요구하는 제도다. 금융소비자들의 권리를 위해 금감원의 검사권한을 외부에 개방,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실제 효과는 지켜봐야겠지만, 수동적으로 ‘민원처리’만 하던 과거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요즘 금융감독 당국의 최고 관심사는 금융소비자보호다. 금감원은 내부조직인 금융소비자보호처에 더 많은 권한을 주고 강화해서 ‘금감원 안의 견제조직’으로 키우겠다는 구상까지 갖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금융감독 체계 선진화 태스크포스(TF)에서는 부원장보 급이던 소비자보호처장을 부원장급으로 올리고,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도 참여시키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금융에서 소비자보호가 이슈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11년 초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가 촉발했다. 부산저축은행 등이 부실을 키우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예금이랑 비슷한 것’이라며 후순위채를 대규모로 판매했고, 영업정지 후 이 채권은 모두 휴지 조각이 되어 버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긴 하지만, 금융소비자들의 권리를 강조하는 분위기 덕분에 여러 가지 제도들이 조금씩 정비되어 가는 중이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들 가운데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곳이 어디인지 정기적으로 파악해서 공시하고 있다. 자주 발생하는 민원 내용에 대해서는 보험사 상품 설명서 등에 별도로 안내해서 소비자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려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전문용어를 남발해 상품 설명서를 만드는 관행도 수정된다. 특히 이런 민원이 많았던 보험 상품에 대해서는 ‘내 보험 알기’라는 내용으로 주요 상품 내용을 요약 정리한 문서를 제공하도록 했다.
대출이나 예금 등 금융상품의 금리를 알아볼 때 소비자가 일일이 금융회사에 전화해야 하는 불편을 덜기 위해 공시제도도 강화되고 있다. 은행연합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주요 협회 홈페이지 등을 통해 여·수신 금리들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 대출금리, 개인 신용대출 금리, 주택담보대출 금리 등에 이어 최근에는 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인 적격대출 금리를 시중은행별로 비교할 수 있는 기능이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추가됐다. 연금저축 수수료 등도 금감원 홈페이지 등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아직 비교 기준이 명확지 않거나, 한눈에 보기가 불편한 점 등은 있지만 차차 개선될 예정이다.
작년 말부터는 이처럼 정보공개를 강화하는 추세에 맞춰 ‘금융소비자리포트’가 나오고 있다. 1호는 연금저축, 2호는 자동차금융이 주제였다. 오순명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은 “특정 상품을 전문적으로 비교 분석하는 것이 일반인들이 오히려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어 3호부터는 다양한 금융 소비자를 위한 정보를 담은 형태로 새롭게 만들려고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감독당국은 민원업무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도 마련 중이다. 김용우 금감원 소비자보호총괄국장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민원 처리 현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며 “민원과 관련해 금융사가 제출하는 자료를 민원인에게 공개하는 방안도 추진하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금융회사들도 이 같은 감독 당국의 지도에 맞춰 스스로 다양한 금융소비자 보호 방안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종전에 비해 민원인을 대하는 고압적인 자세는 많이 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래도 일반 금융소비자들에게 금융회사는 ‘너무나 먼 당신’일 때가 적지 않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불완전 판매나 꺾기 강요 등 금융회사들의 갑(甲) 체질이 바뀌려면 아직 멀었다”며 “금융소비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다양한 제도가 더 많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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