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한일재단 기획 '일본 퇴직기술자 유치'
액체자동분배기 제조社 태하
제품 국산화로 매출 신장
한일재단, 186곳에 기술자 연결
지난 1월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태하의 한기용 사장은 액체정량 공급장치를 국산화(제품명 프로펌프)하는 데 성공했다. 액체정량 공급장치는 액정표시장치(LCD), 자동차, 섬유, 화장품 등 다양한 생산 공정에서 물이나 접착제, 화학성분 등 액체 재료를 정량으로 뿌려주는 장치다. 해외에서 부품을 수입, 생산해 온 이 회사는 최근 수년간 장비 국산화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액체정량공급장치를 자체 생산하기는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고, 세계적으로도 독일의 비스코텍(viscotec)과 일본의 헤이신에 이어 세 번째다.
이 장비를 만들기 어려웠던 이유는 정교함 때문이었다. 0.1㎎의 오차도 없이 극소량의 액체를 빠른 속도로 뿌리려면 장비에 들어가는 특수 방진고무를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방진고무는 ㎏당 700만원이 넘는 고급 재료로만 제작된다. 이 특수고무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을 통해 특수 고무사출 전문가인 일본의 니시자와 도시미치 고문(60)을 영입했다. 니시자와씨는 세계적 타이어 전문 기업인 브리지스톤에서 30년 동안 특수고무를 연구해 온 베테랑이었다. 그는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특수 고무사출성형기를 만들었다.
태하가 만든 장비는 가격이 외국제품의 절반이면서 내구성이나 성능은 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일본의 디스펜서 전문기업 소세이와 1억4000만원가량의 수출계약을 맺었다. 그동안 비스코텍, 헤이신이 만든 제품을 사용해 왔던 국내 대기업들도 프로펌프를 찾기 시작했다. 한 사장은 “프로펌프 개발로 지난해(100억원)보다 매출이 3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부품소재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에 일본 퇴직 기술자를 활용하는 한·일 협력 모델이 최근 큰 성과를 내고 있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이 2008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일본 퇴직기술자유치사업’은 기술과 경험이 풍부한 일본 단카이세대 퇴역 기술자를 중소기업의 기술고문으로 활용해 설계부터 제품 개발까지 전 과정을 지도받는 사업이다. 재단은 5년 동안 396명에 달하는 일본 퇴직 기술자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국내 중소기업과 연결했고 일본 기술자의 자문료, 체재비, 항공료, 통역료 등 관련 비용의 40~50%도 지원하고 있다.
니시자와 고문과 같은 일본 퇴직 기술자들은 풍부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중소기업이 자체 R&D로 풀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는 도우미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일본 기술자를 지원받은 중소기업은 186개에 달한다. 재단이 5년간 40억원을 투입해 일본 퇴직자 유치에 나선 결과 97개 중소기업이 △수출 증대 △수입 대체 △비용 절감 등으로 2375억원의 재무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투입예산 대비 60배에 달하는 성과다.
김탁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기술지원팀장은 “한국 중소기업은 국내에서 확보하기 어려운 소재 분야 전문 기술인력을 채용할 수 있고, 일본 기술자들도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만들 수 있어 양국 모두에 윈윈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 단카이세대
세계 2차대전 직후인 1947~1949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로, 약 800만명이 여기에 속한다. 단카이(團塊)는 ‘덩어리’란 뜻으로, 이들이 대량생산형 조직사회에 순응하면서 동세대끼리 잘 뭉친다는 데서 유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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