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보장제로는 재원 한계
복지급여 종류를 여러개로 나눠 맞춤형 지원해야 혜택 확산 가능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연구실장>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1990년대 중반 복지급여로 생활하는 복지수급자였다. 이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그가 영국의 복지제도에 대해 했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고소득자가 된 지금 많은 세금을 내며 영국에서 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가난하던 시절 받은 복지혜택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고 말한 바 있다. 복지제도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힘이 돼 주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정부는 빈곤층을 위한 복지제도를 대폭 수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도입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변화된 환경에 맞게 새로운 복지제도로 바꾼다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생계, 주거, 의료, 교육급여 등 여러 개의 복지급여제도로 개편하고, 극빈층 중심의 지원에서 벗어나 지원 대상을 빈곤층 전반으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빈곤층에게 생계비,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이 제도는 빈곤층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 방식은 극빈층 소득보장에는 적절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빈곤층 전반으로 지원을 확대하는 데는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빈곤층에게 모든 복지급여를 준다는 점에서 관대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예산제약으로 인해 지원대상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하나라도 복지급여가 절실한 빈곤층에게 아무것도 지원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140만명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더 많은 빈곤층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하나의 복지제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여러 개의 복지급여로 빈곤층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체계로 바꾸는 것이다. 모든 복지급여의 선정기준을 한 번에 대폭 완화하기란 쉽지 않다. 예산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요가 큰 복지급여부터 단계적으로 소득기준과 재산기준을 완화해야 한다. 일부 복지급여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과감한 조치도 필요하다. 도움이 필요한 빈곤층을 위기상황에 방치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복지급여를 묶어두기보다 분리하는 방식이 전제돼야 한다.
복지욕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복지제도 간의 협업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복지 선진국일수록 모든 국민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보편적 복지제도의 비중이 크고,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 복지제도의 비중이 작다. 우리 사회 또한 생활능력이 없는 노인, 장애인, 아동을 위한 복지제도를 점차 보편적 지원제도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이 변화는 노인이나 장애인 비중이 큰 빈곤층 복지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생계비 지원에 초점을 둔 복지제도에서 주거비나 의료비, 교육비 등을 지원하는 복지제도로의 분화가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맞춤형 복지제도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되면 모든 복지급여를 받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사회적 합의를 이뤄낸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빈곤층에게 적정한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다양한 복지급여가 더 많은 빈곤층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행정시스템을 보완하는 일이다.
이상적인 제도개편도 추진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새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 제도를 바꾸는 것이 훨씬 어렵다. 서구 복지국가들이 제도개편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이유이다. 특히 제도개편 과정에서 빈곤층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복지제도는 빈곤층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힘든 순간을 버텨낼 수 있는 디딤돌이 돼야 한다. 맞춤형 복지제도가 빈곤층에게 따듯한 온정을 느끼게 하는 제도로 발전하기를 희망해 본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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