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브랜드 변신 붐
퀵실버, 스포츠 의류로…이스트백·보이런던 재탄생
‘퀵실버(Quiksilver)’는 1990년대 힙합을 상징하는 브랜드다. 국내에선 가수 듀스, 탤런트 정우성 등이 입고 나와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퀵실버 매장에선 힙합의 분위기를 찾을 수가 없다. 파도타기나 스노보드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용 의류만 가득하다.
퀵실버처럼 오래된 브랜드의 콘셉트를 완전히 바꾸는 ‘브랜드 재탄생’이 붐이다. 신규 브랜드를 내놓는 것보다 위험이 낮으면서도 옛 브랜드의 명성을 활용한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매장에 등장한 추억의 브랜드
퀵실버는 2006년 국내 수입업체가 판매를 중단한 뒤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 본사는 2011년 한국법인을 세운 뒤 스포츠의류로 브랜드 콘셉트를 완전히 바꾸고 매장확대에 나섰다. 2년 만에 전국에 24개 점포가 개설됐을 정도다.
2000년도 들어서며 학생가방으로 불티나게 팔렸던 ‘이스트팩(Eastpak)’도 같은 사례다. 한때 학생 두 명 중 한 명은 이스트팩을 메고 다닌다는 말이 있었지만 2009년 이스트팩의 매출은 10억원 정도에 불과했다. 판권을 넘겨받은 유통기업 리노스는 브랜드 이미지를 학생 전용에서 고급형 제품으로 전환했다. 이스트팩을 상징하던 아치형 가방 대신 네모진 모양에 수납공간이 훨씬 많은 ‘피나클’ 등을 주력상품으로 교체했다. 업무, 등산, 여행 등 다양한 용도로 멜 수 있는 데다 노트북, 태블릿PC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국내외 예술가와 협업한 30만원대 고가형 가방도 대거 내놨다. 리노스 관계자는 “30~40대는 이스트팩의 달라진 모습에 눈길을 주고 10~20대는 아예 새로운 브랜드로 인식하면서 작년 매출이 80억원까지 늘었다”고 설명했다.
◆서태지 옷을 입은 빅뱅
‘보이런던(BOYLONDON)’은 1990년대 청바지의 대명사로 통했다.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이 모델로 활동, 패션업계에선 스타 마케팅의 효시로 통한다.
패션 트렌드의 변화와 수입업체의 부도로 한때 매장에서 사라졌지만 요즘 다시 백화점의 입점제안을 받고 있다. 청바지 중심에서 티셔츠, 원피스, 점퍼 등으로 주력품목을 다양화한 게 주효했다.
빅뱅, f(x), 블락비 등 아이돌 가수들도 즐겨 입는 옷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0~20대 젊은 층이 편안하게 골라 입을 수 있는 스트리트 캐주얼로 브랜드 이미지를 바꾼 게 성공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이승원 보이런던 디자인실장은 “K팝 열풍 등에 힘입어 해외 판매 비중이 40%에 달하고 외국 바이어들 문의가 많아 앞으로 더 매출이 올라갈 것”이라며 “독수리 심벌과 로고는 유지하면서 1990년대 보이런던보다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한 게 비결”이라고 전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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