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부상하는 중국경제와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엔저(低)를 무기로 일본 기업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한국 경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다. 한마디로 한국 경제가 중국과 일본의 틈새에 끼어 ‘샌드위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로 묘사한 리처드 돕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 소장은 우리나라가 당면한 문제로 ‘위기 불감증’을 꼽는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위기는 국민들이 단합해 이를 잘 극복하지만 충격이나 위기가 서서히 오면 대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경제가 ‘냄비 속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끊임없는 기술혁신, 규제완화, 기업가정신·근면성 회복 등이 필요하다.
#中제조업 기술 '무서운 기세'
중국 제조업 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 바이오 등 차세대 산업에서는 제조업 강국인 한국을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미래산업 분야에서 세계 정상권에 올라선 기술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휴대폰, 디스플레이, TV, 철강 등 한국의 주력산업 분야에서도 중국의 기술력은 말 그대로 ‘턱밑’까지 바짝 추격했다. 중국산 자동차의 질주도 무섭다. 산업연구원 등의 자료에 따르면 한·중 양국간 기술격차는 2002년 4.7년에서 2011년엔 3.7년으로 줄었다. 기술격차가 줄어드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상황이어서 역전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반도체는 2.4년, 조선은 3.1년 정도의 기술차를 보이고 있다. 차이가 많을 것으로 인식되는 자동차 기술력도 불과 4년을 조금 넘는다. 방심하면 언제든 역전당할 수 있는 격차다.
중국 제조업은 의류 신발 가방 등을 수출 주력품으로 하던 시대는 벗어난 지 오래다. 국제금융연구센터에 따르면 2000년 중국의 10대 수출품이던 의류 섬유 신발 장난감 등은 2012년에는 모두 모습을 감췄다. 대신 컴퓨터와 통신장비, 반도체 등 직접회로, 액정디스플레이, 조선 등이 1~5위를 꿰찼다. 연구개발(R&D) 분야의 약진은 중국 기술력이 급속히 강해지는 이유를 잘 설명한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발표한 ‘2012년 국제특허신청 건수’에서 중국의 전자통신기업인 중싱(中興)이 특허 2463건을 출원해 개별 기업으로는 1위를 차지했다. 2위 마쓰시타(2463건)에 이어 3위도 중국기업인 화웨이(1831건)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 LG 등은 뒤로 밀렸다.
#日, 잃어버린 20년 종지부?
작지만 강한 나라 일본은 한때 세계가 부러워하는 벤치마킹 모델이었다. 세계는 일본의 급속한 경제발전을 부러움과 시기의 눈으로 지켜봤다. 도요타, 소니, 닌텐도는 지구촌 구석구석을 파고들며 ‘주식회사 일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전도사였다. 소니는 전자제품의 상징이었고, ‘도요타 배우기’는 경영의 필수 코스였다. 일본인들의 부지런함과 검소함도 경제발전에 기여한 핵심 덕목으로 여겨졌다. 1970~1990년 일본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10%에 육박했다. 전 세계는 일본의 무한한 번영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밋빛 경제전망에 취한 기업과 개인들은 증시와 부동산시장에 돈을 쏟아부었고, 결국 1980년대 후반 터무니없이 부풀었던 버블(거품)이 폭발했다. 내리막의 서막이었다. 일본은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0.3%로 추락하며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종지부를 찍어가는 모습이다. 엔화 약세와 기업 기(氣)살리기가 골자인 ‘아베노믹스’로 일본경제에 빠르게 온기가 생기고 있다.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는 최대 비결은 엔저다. 아베 총리는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로 엔화 약세를 유도, 수출기업을 적극 지원한다는 복안이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도 일본의 엔화 유도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일본경제 회복이 세계경제에 도움에 된다는 판단에서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제품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기업으로는 그만큼 부담이 커진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점차 기력을 회복하는 데 반해 한국 기업들은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경제'냄비 속 개구리'
‘냄비 속 개구리’는 물의 온도가 서서히 뜨거워지면 개구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안에서 그냥 죽어가는 것을 일컫는다. 이는 위기를 깨닫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처하다 몰락하는 국가나 기업을 비유할 때 흔히 쓰인다. 8분기 연속 전분기 대비 0%대 성장, 월 20만명대로 떨어진 신규 취업자 수, 1000조원대에 달하는 가계 부채, 뒷걸음질치는 기업투자…. 한국 경제 위기의 징후들이다.
한국 경제가 ‘냄비’ 속에서 뛰쳐나오려면 전반적인 구조개혁과 함께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이 시급하다.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내수시장 확대, 끊임없는 기술혁신, 교육 인프라 강화, 규제완화, 기업가정신 회복 등도 필요하다.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에서 있는 한국 경제는 양면성이 있다. 이른바 ‘샌드위치’는 양쪽 사이에 끼어 숨쉬기가 곤란할 수도 있지만 양쪽을 잘 활용하면 성장의 발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위기는 뒤집으면 기회가 되는 법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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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난 소니…일본은 '엔低 잔치'
엔저(低) 여파로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엔저의 날개를 달고 예상밖의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는 반면 현대자동차와 포스코 등 우리 기업들의 실적은 악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도요타 등 자동차 업체들의 실적이 크게 좋아진 데 이어 전자업체인 소니도 5년 만에 흑자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니는 지난달 25일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연결 최종 순이익이 400억엔(약 4500억원)에 이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지난 2월 발표한 기존 예상치(200억엔 흑자)를 두 배가량 웃도는 실적이다. 소니의 흑자 전환은 2007회계연도(2007년 4월~2008년 3월) 이후 5년 만이다. 소니는 2011회계연도에 4566억엔(약 5조1500억원)의 사상 최대 적자를 냈다.
소니가 5년 만에 흑자로 돌아선 것은 엔화 가치가 하락한 영향이 컸다. 지난 2월 소니가 기존 전망치를 발표할 당시 상정했던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88엔, 엔·유로 환율은 유로당 115엔이었다. 그러나 아베 신조 총리 집권 이후 적극적인 금융완화로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지난 회계연도 마지막 분기(올 1~3월)에 실제 적용된 환율은 달러당 92.4엔과 유로당 121.9엔으로 5~6% 정도 높아졌다. 그만큼 엔화 가치는 떨어져 장부에 기입하는 엔화 환산 수치가 커진 것이다.
엔고(高) 시절 실시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도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됐다. 희망퇴직 공장폐쇄 등과 더불어 작년 9월 삼성전자와의 액정표시장치(LCD) 합작사업에서 손을 뗐고, 미국 뉴욕에 있는 본사 건물도 11억달러에 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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