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물 금리 0.15%P 급등
국채 30년물 1억 투자땐
최대 300만원 넘게 손실
“한마디로 날벼락을 맞은 기분입니다.”
서울 압구정동에 사는 60대 초반 자산가 박모씨는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하자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 10월 아파트를 판 돈에 만기가 돌아온 정기예금을 합쳐 물가연동 국고채(물가채) 10억원어치와 만기 30년짜리 국고채(30년물) 4억원어치를 샀다. 그는 지난해 11월께 장기 금리가 급등하고 채권값이 크게 떨어져 손해를 보다가 올 들어 다시 금리가 하락, 상당 부분 만회하고 있었다. 박씨는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채권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려고 했는데 예상과 달리 기준금리 동결로 손절매를 하던지 아니면 몇 년간 계속 보유할지를 놓고 고민”이라고 했다.
한은이 11일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하면서 채권 투자자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특히 지난해 30년물과 물가채 등 장기채에 거액을 맡긴 자산가들은 고스란히 거액을 물려 깊은 시름에 빠졌다. 이들은 당초 한은이 0.50%포인트 정도의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새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17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대규모 부동산 규제 카드를 꺼내든 데다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는 등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5일에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사상 최저인 연 2.44%까지 하락하는 등 채권시장은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금통위는 연 2.75%인 기준금리를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결정도 만장일치는 아니었다.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2.8%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기존에 예상한 ‘상저하고’의 완만한 회복세는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올 하반기 물가상승률이 3% 초중반까지 갈 것”이라며 선제적인 인플레이션 억제가 필요하다며 금리 동결 근거를 들었다. 예상밖 금리 동결에 국고채 금리는 3년물이 0.15%포인트, 10년물은 0.12%포인트, 30년물은 0.10%포인트 급등했다.
지난해 물가채와 국고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올해 경기 침체가 극심해지면서 금리가 계속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금리가 떨어지면 적잖은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어서다.
장기채 금리는 지난해 11월께부터 계속 상승했다. 30년물 금리는 지난해 10월10일 연 2.95%까지 하락했다가 12월26일 연 3.43%까지 치솟았다. 올 들어선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 금통위가 열리기 직전인 10일 오전에는 연 3.12%를 기록했다.
손해 못견딘 투자자들 "채권 팔자" 속출
액면가 1억원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10월 최고 1억50만원에서 9868만원으로 182만원가량 떨어졌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매입시 지급하는 수수료(0.08%포인트)까지 더하면 고점 때 매입한 투자자는 300만원 넘게 손실을 보게 된다. 물가채는 지난해 11월 액면가 1억원당 1억1253만원까지 갔다가 10일 1억1236만원으로 하락했다. 손해를 견디다 못한 투자자들이 지난달 물가채 78억원어치와 30년물 61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시장 예상이 크게 빗나감에 따라 앞으로의 전망을 놓고도 적지 않은 혼선이 일고 있다. 한 증권사 프라이빗뱅커는 “지난해 채권을 매입한 사람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며 “상당수는 절세 효과로 금리 상승으로 인한 손해를 상쇄할 수 있는 4~5년 뒤까지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보험사 채권운용팀장은 “예상치 못한 결과”라며 “전 정부에선 거시정책 공조에 적극적이던 한은이 새 정부 들어선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한화투자증권은 “기존 인하 전망을 철회하고 연내 2.
75% 동결을 전망한다”고 금리 전망을 수정했다. 반면 신동준 동부증권 투자전략본부장은 “한은의 동결 결정으로 향후 기준금리가 더 큰 폭으로 인하될 가능성이 오히려 커졌다”고 말했다.
조귀동/이태호/서정환 기자 claymo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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