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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품팔아 싸고 좋은 제품 5만점 구비…하루 1500명 방문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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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 이종희 <보물마트 사장>

日 '100엔숍' 벤치마킹…'1000냥 백화점'으로 기반 다져
박바가지·소코뚜레 등 특이한 상품으로 고객 흡수
30년 넘는 밑바닥 유통경험…대형마트와 경쟁도 자신




서울 남쪽 시흥동에 수령 8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다. 이 지역 명물이다. 그 근처에 '보물마트'가 있다. 660㎡(200평) 규모의 중형 생활용품 매장이다. 인근에 대형마트들이 많지만 보물마트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하루 1500명이 찾는다. 비결이 무엇일까.

1980년대 중반 영등포역앞 광장. 우렁찬 목소리로 “골라 골라”를 외치는 젊은이가 있었다. 액세서리 노점상이다.

단속에 걸린 그 젊은이는 파출소로 끌려가 일장 훈시를 듣고 나왔다. 때로는 하루나 이틀밤을 파출소에서 새우기도 했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어깨’들에게 끌려가 혼쭐이 날 때도 있었다. 점심 때는 짜장면을 시켜 부인과 함께 길거리에 앉아 먹었다. 먹는 게 아니라 젓가락으로 비벼 후루룩 마셨다. 노점을 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두 아들을 집에 남겨둔 채 부부는 영등포역과 인천 주안역 등을 전전했다. 주안에서는 어깨들과 친해져 장사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이 젊은이가 이종희 보물마트 사장(57)이다.

서울 시흥동에 있는 보물마트는 중형 생활용품 소매점이다. 이곳은 평일에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 사장은 “창업 이후 해마다 10~20% 내장객이 늘어 지금은 하루 평균 150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는 “인근에 몇 개 대형마트가 있지만 그들과 경쟁해서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비결이 뭘까.

첫째, 30년 넘게 밑바닥에서 쌓아온 유통 노하우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그의 험난한 인생역정은 상경과 더불어 시작됐다. 집안형편이 어려워 고교를 다니며 방과 후에는 버스회사에서 자동차 정비업무를 배워가며 일했다. 작업복을 입고 차 밑바닥에서 수리를 담당했다.

유통은 25세인 1981년부터 시작했다. 밑천이 없어 전철역 광장에서 10년간 노점상을 했다. 영등포역을 비롯해 역곡 동암 주안 등 사람 왕래가 많은 수도권 1호선 전철역 광장이 그의 무대였다.

그뒤 인천 석남동 네거리에서 10평짜리 점포를 임대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딱 한 달만 ‘깔세’로 임차했다. 비록 임차점포였지만 그가 처음 마련한 번듯한 점포였다.

이 사장은 “소풍날을 앞둔 초등학생처럼 가슴이 벅차 개장 전날 밤을 꼬박 새웠다”고 회고했다. ‘노점상’에서 ‘사장’으로 신분이 수직상승한 것이다. 주요 신문지국에 전단지 배달을 의뢰한 상태였다. ‘생활용품을 무조건 1000원에 팝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일부 화장품은 재고 물량을 ‘떨이’로 확보해 정가 2만원짜리를 1000원에 판다는 것도 실었다. 이런 식으로 8t 트럭 8대분의 상품을 주문해둔 상태였다. 일본에서 배운 ‘100엔숍’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혹시나 하고 아침 일찍 매장을 찾은 그는 눈을 의심했다. 구름떼 같은 인파가 모여 있었던 것이다. 매장이 작아 한꺼번에 30명 정도밖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 기다리는 손님들이 먼저 들어간 사람들을 향해 “빨리 좀 나오라”고 고함을 지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성공을 확신한 그는 1992년 말 부천에서 ‘1000냥 백화점’을 열었다. 이사장은 “당시에는 1000원짜리 균일가격 판매가 무척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다.

2003년 시흥에 보물마트를 열었다. 그는 “창업 초기 하루 400~500명이던 손님이 5년뒤엔 800~900명으로 늘어났고 지금은 약 1500명 정도 된다”고 밝혔다.

둘째,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갖춘 다양한 제품 구색이다. 그는 싸고 좋은 물건을 구하기 위해 동대문 남대문은 물론 화곡동 광명생활용품유통단지와 지방 등 전국을 샅샅이 훑었다. 이 사장은 “남들보다 1시간 먼저 도매시장에 도착해 싸고 좋은 제품을 살폈다”고 말했다.

부천에 집이 있는 그는 지금도 직원들보다 먼저 보물마트에 나와 셔터문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 그는 “현재 취급하는 제품은 문구·완구·스포츠용품·생활용품과 아이디어상품 등 모두 5만여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실 바늘 단추 등 아주 작은 물건부터 다른 매장에서 구하기 힘든 진귀한 것들도 있다. 박바가지나 소코뚜레 등이다.

이 사장은 “박바가지는 이사나 개업 때 액땜용으로 밟아 깨트리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소코뚜레는 액을 막고 복을 불러준다는 속설이 있어 그런지 가끔 찾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매장은 그리 크지 않지만 우리 매장에선 탱크와 신선식품을 빼면 뭐든지 구할 수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어디 가면 무엇을 살 수 있는지 머릿 속에 백과사전식 구매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인터뷰 도중 “싸고 편한 구두를 어디 가면 살 수 있는지”를 묻자 그는 즉석에서 “안양에 가면 재고 구두를 전문적으로 파는 점포가 있는데 5만원 이내에 편한 구두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해줬다.

셋째, 단골 확보다. 시흥은 서울 어느 지역보다 토박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이들을 단골로 끌어들였다. 이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저렴하면서도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 사장은 “대형마트에 비하면 매장이 작지만 이곳에 수많은 제품을 진열해 놓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쉽게 물건을 고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랜 기간 도매상과 거래해 구입 가격을 낮출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 주부들이 종종 찾아온다. 손님들이 구해달라는 것이 있으면 귀찮아 하지 않고 구매 노하우를 살려 제품을 구해다 놓는다.

이 사장은 젊은이들이 인터넷 쇼핑을 즐기는 것을 파악하고 인터넷 쇼핑몰도 구축했다. 노점에서 함께 급하게 짜장면을 먹던 이 사장 부부는 이제 해외로 눈을 돌려 유통선진국들의 노하우를 벤치마케팅해 쇼핑몰에 접목시키고 있다. 부부가 일심동체로 장사하면서도 이 사장은 시간을 쪼개 경기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고 거기서 우수상까지 받았다. 노점상을 할 때 동생과 함께 밥을 차려먹던 큰 아들은 중국 인민대를 나와 이우시장에서 국제무역 업무를 하고 있다. 이 사장은 “중형 마트가 대형마트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기 나름의 주특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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