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호 생활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
“대형마트 판매품목 제한 방침을 완전히 취소할 때까지 목숨 걸고 싸울 겁니다.”
지난달 서울시가 대형마트 판매품목의 제한 방침을 발표했을 때 한 농산물업체 사장은 이렇게 울먹이며 하소연했다. 양파와 대파를 주로 취급하는 이 회사는 연 매출 70억원 중 90% 이상을 대형마트 납품에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가 추진했던 대로 대형마트에서 양파와 대파를 팔 수 없게 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처지였다. 그는 “대형마트 납품이 중단되면 직원 70명이 모두 실업자가 될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판매제한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 같다. 서울시가 사실상 방침을 철회했다. 시장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고, 소비자의 불편을 외면한 것이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서울시 정책은 소비 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전통시장을 돕겠다는 선의(善意)에서 시작됐다. 대형마트와 SSM에서 채소 생선 등을 못 팔게 하면 소비자들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전통시장으로 향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생태찌게를 끓여 먹으려는 소비자들은 재래시장과 대형마트를 오가며 장을 봐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대형마트와 SSM에 납품하는 중소기업과 농어민들은 ‘유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예컨대 국내 오징어의 15%를 매입하고 있는 이마트가 오징어 판매를 중단할 경우의 파장은 간단치 않을 게 분명했다. 대형마트들은 이미 의무 휴업을 통해 영업일을 줄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골목상권이 살아난 것도 아니다.
지난 한 달은 서울시의 어설픈 정책이 만들어낸 혼란의 연속이었다. 대형마트와 SSM에 납품하는 중소기업과 농어민들은 몇 차례나 서울시를 항의 방문, 판매품목 제한 조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서울시는 분쟁 상권 위주로 판매품목 제한을 권고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지만, 이 또한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대형마트와 SSM이 새로 점포를 낼 때마다 주변 상인들은 서울시 방침을 근거로 일부 품목의 판매 제한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맞서 농어민과 협력업체들의 항의가 줄을 잇고,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되는 일이 반복될 판이다. 그때마다 서울시는 어떻게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유승호 생활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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