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축이 돼지다. 돼지는 약 1만년 전 신석기 농업혁명기에 중국과 중근동에서 멧돼지를 가축화 한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돼지는 1200여종, 9억6300여만마리(2011년)가 사육되고 있다. 식육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며 어느 부위 하나 버릴 게 없다.
그래서인지 돼지를 뜻하는 한자만도 20가지가 넘는다. 상형문자인 시(豕)는 제사용 돼지이며 한자 부수로도 쓰인다. 집 가(家)도 豕에서 유래했다. 옛날에는 돼지를 집에서 길렀기 때문이다. 가축으로서 돼지는 돈(豚)인데, 복어가 하돈(河豚), 돌고래는 해돈(海豚)인 게 흥미롭다. 저(猪)는 주로 암퇘지나 멧돼지, 해(亥)는 12간지의 돼지다.
영어도 세분화돼 있다. 돼지는 통상 pig인데 거세한 수퇘지는 hog, 거세 안 한 수퇘지는 boar, 암퇘지는 sow라고 한다. 집합명사로는 swine이어서 돼지독감을 swine flu로 부른다.
돼지꿈에서 보듯 돼지는 다복의 상징이다. 수태 4개월 만에 새끼 8~12마리를 낳는 왕성한 번식력 덕이다. 돈(豚)이 돈과 발음이 같아서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불결, 탐욕, 미련함 등 불명예의 대명사 또한 돼지다. 흥청망청했던 남유럽 국가들엔 이니셜을 딴 ‘PIGS’란 별명이 안성맞춤이다.
돼지가 불결해 보이는 것은 땀샘이 없어 진창에 자주 뒹구는 탓이다. 그러나 배설도 정해진 곳에서만 할 만큼 의외로 깔끔하다. 이슬람과 유대교에서 돼지고기를 금하지만 고온건조한 사막기후가 사육에 부적합했던 배경도 있다. 돼지는 게걸스러워도 모성애가 강하다. 어미와 새끼를 떼놓지 않으면 어미가 새끼부터 먹이느라 잘 먹지 않을 정도다. 후각은 개보다 뛰어나 프랑스에서는 송로버섯을 찾을 때 돼지를 이용한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돼지들은 공포 그 자체다. 우두머리 돼지 나폴레옹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욱 평등하다”며 공포사회로 몰아간다. 이 소설이 스탈린 치하의 옛 소련에 대한 조롱임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50만부가 팔린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9년)의 최영미 시인이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이 화제다. 앞서 시집 ‘돼지들에게’(2005년)에서 위선과 기만의 지식인들을 신랄하게 공격했던 후속작이다. 여기서 감옥에서 한 이십년 썩은 뒤에 변신한 돼지가 누구인지는 문단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최 시인이 이번엔 북한의 3대 세습과 정치인들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할아버지도 돼지/아버지도 돼지/손자도 돼지/돼지 3대가 지배하는 이상한 외투의 나라(하략)”(‘돼지의 죽음’ 중에서) 혹시 비유 대상이 된 돼지들이 성내지 않을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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