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테러는 미국의 안보개념을 바꿔놨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표현처럼 ‘적이자 파트너’인 중국에서 테러리즘 쪽으로 총구의 겨냥점이 옮겨갔다.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의 명분은 ‘테러 척결’이었다. 미국은 10년간의 추적 끝에 9·11테러 주범으로 지목한 빈 라덴을 사살,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했지만 그 공포는 여전히 지구촌을 떠돈다.
미국의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총구는 ‘사이버테러리즘’을 겨냥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디지털 인프라는 미국의 전략적 국가재산”이라고 선언하고 미군에 사이버사령부를 창설했다. 사이버테러가 국가안보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의 대처를 공식화한 것이다. 사령관을 맡은 키스 알렉산더 국가안전국장은 사이버공간을 육·해·공·우주에 이어 ‘제5의 전장(戰場)’으로 규정했다. 전력을 강화해 대비해야 할 전쟁터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실제로 ‘제5의 전쟁터’ 사이버 공간에서는 오늘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전투는 국가 간에, 기업 간에, 때로는 개인과 국가·기업 간에 치러진다. 미국은 지난해 이후 뉴욕타임스, 페이스북·코카콜라·애플 등 언론사와 주요 기업은 물론 몇몇 정부기관까지 해킹을 당했다. 미국은 이런 무차별한 해킹에 중국이 연루돼 있다고 믿지만 중국은 사실무근이라며 발끈한다. 미국이 사이버 전력 확충에 중국이란 명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8월 러시아-그루지야(조지아) 전쟁은 사이버 공격이 핵만큼이나 무섭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러시아는 그루지야의 정부·금융기관은 물론 군정보 시스템 해킹으로 오작동을 유도했고, 군·정부의 신경이 마비된 그루지야는 전쟁 시작 5일 만에 손을 들었다. 총성이 들리지 않는 사이버 전력의 공포스런 위력이 전쟁터에서 사실로 확인된 사례다. 러시아-그루지야 사례는 역으로 약소국가나 소규모 집단이라도 사이버테러로 강대국을 위협하거나 실질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이버테러는 ‘빈국의 핵무기’라는 생화학무기처럼 적은 비용으로도 치명타를 가하는 무기다. 특히 정보기술(IT) 의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사이버 테러에 치명적이다. IT 강국임을 자랑하는 한국 또한 예외는 아니다. 지난 3월20일 발생한 언론사·금융회사에 대한 무차별 해킹은 우리나라가 사이버테러에 얼마나 취약한지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사이버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사이버 전력은 공격용 창이면서 수비용 방패이기도 하다. 기업정보나 기술을 불법적으로 빼내고, 인프라를 파괴하고, 군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사이버테러는 영화 속 스토리가 아니다. ‘미래 테러리즘 전쟁터는 사이버 공간이 될 것’이라는 경고는 미래가 아닌 엄연한 현실 얘기가 되어가고 있다. 4, 5면에서 우리나라 3·20 해킹사태와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이버 전쟁을 상세히 알아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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