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체의 구조와 생리(生理), 문제를 일으키는 병리(病理)적 요소를 탐구한다.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이 점에선 다르지 않다. 한의학이 불로장생이나 신선이 되는 법을 추구한다는 오해는 그야말로 오해다.
#병의 원인은 무엇일까
한의학은 ‘관계’를 매우 중시한다. 인체와 외부환경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할 때 그런 관계를 말한다. 신체와 정신, 신체장부와 기관 사이의 관계도 주시한다. 특정 증상이나 질병을 일으키는 절대적인 병인이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체질과 병의 원인 간의 관계 속에서 증상과 질병을 ‘상대적으로’ 파악한다.
한의학에서는 병의 원인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외인(外因), 내인(內因), 불내외인(不內外因)이 그것이다. 외인은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풍한서습조화(風寒暑濕燥火)’의 육기(六氣)를 의미한다. 현대적 의미로는 계절에 따른 기온, 습도 등 기후 요소들의 편차와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외부에 존재하는 사기(邪氣)를 뜻한다. 한의학은 이런 특성과 체질적 특성이 합쳐져 어떤 양상을 나타내는지를 살핀다. 이런 개념에서 한의학은 감기도 체질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고 본다. 열이 많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목이 붓고 고열이 나는 경우가 많다. 몸이 찬 사람은 콧물이 나거나 코가 막히는 증상이 심하고 미열인 경우가 많다.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라도 한의학은 다르게 처방한다.
내인은 ‘희노우사비공경(喜怒憂思悲恐驚)’의 칠정(七情)을 뜻한다. 감정과 스트레스 같은 심리적 요인이 질병을 일으킨다고 한의학은 본다. 서양의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주로 정신과 영역에서 다룬다. 서양의학도 신경성 위염이나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같은 개념을 도입해 정신적 요소와 신체적 증상간의 관계를 보긴 하지만 일반적이진 않다.
#마음이 병을 일으킨다
하지만 한의학은 거의 대부분의 증상이나 질병이 정신적 요소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봐왔다. 물론 실제 치료에서도 이런 관점을 오래 전부터 반영해 왔다. 예를 들어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다고 치자. 1차적으로 의사는 과식이나 상한 음식과 관련되지 않았을까를 살핀다. 이것이 전부일까? 전날 이성친구와 싸웠거나 부모님께 심하게 야단을 맞은 경우도 소화가 안 될 수 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도 체한다. 심리적 요인이 신체적 증상을 일으킨 사례다. 음식에 의한 증상이지만 치료법은 달라진다.
다소 어려운 표현이지만 불내외인이라는 것도 있다. 음식이나 과로, 성생활 그 외에 외상과 기생충 등과 같은, 외인과 내인 이외의 다양한 병인들을 포괄한다. 선천적으로 소화기의 기능이 발달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같은 음식을 먹어도 다른 증상을 보인다. 치료법에도 차이를 둬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개인의 타고난 체질과 동시에 그가 처한 자연적, 사회적 환경까지 파악하는 것이 진단의 필수과정이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한의학에서는 태생적으로 ‘1분 진료’가 불가능하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사와 환자 관계는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발전한다.
이를 통해 의사는 환자를 단순히 질병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인격을 가진 개체로서 충분히 인식할 기회를 갖는다. 이런 인식은 다양한 증상에 상대적 가중치를 부여하고 치료를 결정하는 데 필수적이다. CT나 MRI 같은 진단기계가 아닌 관찰자인 의사의 판단이 중요한 셈이다.
#체질로 푸는 사상의학
개체적 특성은 구체적으로 남녀노소(男女老少), 비수흑백(肥瘦黑白), 한열허실(寒熱虛實) 등과 같은 기준으로도 분류된다. 이런 관점에서 성립된 대표적 체질의학이론이 바로 사상의학(四象醫學)이다. 장부(臟腑)의 대소로 표현된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의 체질별로 생리, 병리적 특성들을 분류하고 여기에 심리적 요소와 치료법까지 연결시킴으로써 성립된 하나의 완결된 의학체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상의학에서 언급하는 체질별 특성들이 한 개인에게 일률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체질 판정은 특성들의 1 대 1 대입이 아닌 전반적인 경향성에 대한 한의사의 임상적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한의학에서는 동일한 병인이라도 환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개체적 상대성이 중시된다. 또 증상 파악과 진단이 의사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내려질 수밖에 없는 관찰자적 상대성도 중시된다. 이런 면에서 한의학의 관계 중심적 시각은 의학에서의 상대성 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한의학은 고대의 유물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오랜 경험과 검증을 통해 물려준 살아있는 유산이다. 우리에게는 이것을 보존하고 발전시킬 역사적 책무가 있다. 소중한 유산을 각종 오해와 루머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역사적 재해다. 현대과학의 산물인 각종 진단기기들에 대한 한의사들의 접근이 제한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언제까지 한의학은 고대의 신화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한의학은 진화해왔고 앞으로도 진화해 가야 한다. 동의보감 400주년을 맞은 올해가 한의학이 새롭게 비상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송상우 보현한의원장 daehanmink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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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가르침…"음식이 곧 약이다"
한의학의 대표적 치료 수단은 침, 뜸, 한약이다. 이 중에서도 한약은 한의학의 자연친화적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치료법이다. 특정 성분만을 추출하거나 합성해서 만들어지는 양약과는 달리 한약은 보통 식물이나 동물의 특정 부위 혹은 전체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재료들 중 한약재로 쓰이는 것들이 많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란 말은 음식도 그 특성에 관한 한의학적 지식을 활용할 경우 질병을 치료하는 데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의학에서는 약으로 증상이 어느 정도 개선되면 나머지는 음식을 통해 조리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점은 한약과 관련된 한 가지 뿌리 깊은 오해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즉, 한약이 간독성을 일으킨다는 오해는 어떤 의미에서 음식이 간독성을 일으킨다는 말과 같다. 흔히 인식되지 않는 점이지만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에는 독이 있다. 이 때문에 한 가지 음식을 지나치게 먹는 것은 다량의 독을 섭취하는 것과 같아 몸에 해가 될 수 있다. 물론 몸에 해가 될 정도로 섭취하는 것은 인체의 해독능력을 초과하는 아주 많은 양을 오랜 시간 동안 섭취해야 하므로 음식을 통해 간독성이 생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점은 한약도 마찬가지다. 더불어 한약은 달이는 과정에서 열을 통해 독성이 제거되기 때문에 몇몇 독성이 강한 약재를 제외하고 한약이 간독성을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흔히 안전하다고 여기는 양약의 경우에도 타이레놀(아세트 아미노펜)과 같은 약은 간독성을 유발하기 때문에 최대 복용량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술과 함께 복용하는 것은 금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양약이든 한약이든 오남용을 피하고 복약기준을 준수하는 것이지, 한약 자체가 간에 나쁘다는 구호는 악의적 비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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