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 '불씨'…상반기까진 살얼음판
日, 엔화 풀어 경기부양 … 단기 상승에 '무게'
좀처럼 상승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 한국 증시와 달리 글로벌 증시에 훈풍이 불고 있다. 미국 다우존스지수와 S&P500지수는 경기 회복 기대감에 역사적 최고가를 다시 쓰고 있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3월8일 기준) 역시 아베 정부의 엔저 정책에 힘입어 작년 말보다 18.2% 상승했다. 독일 DAX지수도 유로존 위기가 최악의 상황은 지났다는 안도감으로 작년 말 대비 4.9% 올랐다. 국내 증시의 ‘나홀로 부진’에 지친 투자자들이 눈을 해외로 돌리고 있는 이유다.
○살아나는 미국 경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법이다. 2008년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글로벌 경기 침체를 불러온 미국이 이제는 세계 경제 회복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의 소비심리가 살아나면서 글로벌 교역량이 증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뿐만 아니다. 미국이 셰일가스 개발에 적극 나선 데 힘입어 세계 원자재 가격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물가상승 우려에서 벗어난 세계 각국은 경제회복을 위해 재정 및 통화정책을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글로벌 유동성은 어느 때보다 풍부해진 상황이다. 각종 리스크가 잠잠해지면서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투자 대상을 바꾸고 있다. 미국 다우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게 된 배경이다. 미국 부동산 시장도 살아나고 있다. 민간 소득 증대와 낮은 주택대출 금리에 힘입어 부동산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주택 재고가 감소하면서 신규 주택 건설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경기 회복은 각종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1월 미국 기업 설비투자의 대리 지표인 핵심 내구재 신규 주문은 전달에 비해 6.3% 증가했다. 2011년 12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달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집계한 제조업 및 비제조업지수도 전문가들의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ISM 제조업지수는 54.2으로 2011년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ISM 비제조업지수도 2012년 2월 이후 최고치인 56.0로 나타났다. 민간수요 회복이 정부 수요 위축을 보전하며 경기 회복세를 주도하는 모습이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최근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경기 활성화를 위해 양적완화 조치를 당분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도 호재다. 일각에서 제기된 양적완화 부작용으로 인한 조기 종료 주장을 일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 리스크’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업들이 본격적인 투자를 미루고 있다는 것은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올해 미국 경제는 상반기 2.4%, 하반기 3.1% 등 연간 2%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증시 역시 견고한 모습을 보이면서 글로벌 경제의 안전판이자 성장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존 회복은 시간 걸릴 듯
지난해 여름 유럽중앙은행(ECB)이 무제한 국채 매입 프로그램(OMT)을 발표한 이후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긴축 재정 요구를 수용하면서 국채금리가 하향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또 그리스와의 재협상이 타결되고 유로안정화기구(ESM)가 출범하면서 재정위기 재발 가능성도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는 작년 4분기 성장률이 전기에 비해 0.6% 감소하면서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였다.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로존의 올해 경제전망을 0.1% 성장에서 0.3% 위축으로 하향 조정했다.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페인 이탈리아가 재정 긴축을 시행해야 하는 만큼 당분간 유럽의 경제회복은 더딜 것으로 판단된다.
일각에서는 재정위기 진정세가 지속되고 미국과 중국 경기가 예상대로 회복되면 대외 수요가 점진적으로 늘면서 하반기부터 유럽 경기도 나아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재정긴축 요구를 받는 국가들의 불만이 커지는 게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총선에서도 이런 여론이 반영됐다.
이탈리아 총선 결과 하원은 민주당이 과반수를 차지했지만 상원은 과반수 정당이 나오지 못하면서 정부 구성에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 연립정부를 구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민주 자유국민 오성운동 등 3개 정당 간 이견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 모습이다. 최악의 경우 총선이 다시 실시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상반기 중 이탈리아 국채의 만기가 대거 도래하는 등 재정 위기가 재부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의 ‘정치 리스크’에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때문에 유럽 각국의 증시가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디플레 탈피에 ‘올인’하는 일본
일본 정부가 디플레이션을 공식 선언한 건 2001년 3월이었다. 일본 정부는 2006년 6월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다”고 밝힌 지 3년 만인 2009년 11월에 또다시 디플레이션을 선언했다. 한번 빠져든 디플레이션 국면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작년 12월 출범한 아베 정권은 디플레이션 탈피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출범했다. 아베 총리는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해 10조엔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키로 했다. 일본은행은 물가상승 목표치를 2%로 상향 조정하고 2014년부터 매달 13조엔 규모의 무기한 국채매입을 실시하는 등 양적완화를 시행키로 했으며, 이런 경기부양책의 효과로 인해서 올 한 해 일본 경제는 2% 내외의 성장을 이룩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일본의 엔저 정책을 사실상 용인해주면서 일본 기업들의 실적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호재가 겹친 만큼 일본 증시가 올해 좋은 추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공공 측면의 경기부양 효과는 단기에 그칠 뿐 아니라 국가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일본이 모든 수단을 동원한 뒤에도 디플레이션 탈피에 실패할 경우 ‘더 이상의 정책수단이 없다’는 신호로 인식되면서 일본발(發) 경제위기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강현구 <현대증권 리서치센터 선임연구원 hg.kang@hdsr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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