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한국 자동차산업 40년···제2위기 맞았다
② 수입차 급성장, 국산차 업계 위협한다
③ 현대·기아차 도요타 제칠수 있을까
④ 2015년 한국 자동차 산업 향방은
⑤ 현대·기아차 글로벌 톱3 될까, 도요타-GM-폭스바겐 3강체제에 도전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2009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대규모 리콜 사태에 휘말렸다. 이듬해 도요타와 렉서스가 전 세계 리콜한 차량은 1000만 대에 달했다. 2008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 결산에선 회사 설립 59년 만에 처음으로 4369억 엔(5조700억 원)의 순손실을 냈다. 당시 자동차 전문가 및 경제 분석가들 사이에선 도요타가 부활하기까진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도요타는 최악의 위기를 겪은지 2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태국 홍수 사태로 부품공급망이 붕괴됐으나 1년 만에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974만 대를 팔아 미국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리를 되찾았다. 올해는 엔저(엔화 약세)에 힘입어 사상 첫 1000만 대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도요타의 위기 극복 비결은 무엇일까.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구조조정을 경험한 유럽의 자동차 업체들은 기본기와 원칙을 중시하는 도요타의 위기관리 노하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 환율 리스크, 내수 부진 등을 겪고 있는 현대·기아차도 예외는 아니다. 그간 성장세가 꺾일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도요타 위기에 강했다…현대차는?
리콜, 엔고, 대지진, 홍수…. 지난 몇 년간 잇단 위기를 경험한 도요타는 더욱 강해졌다. 도요타는 생산이 줄고 수익성이 떨어진 시기에도 대규모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대신 효율성을 높이는 생산혁신 활동에 매진했다. 사람을 올바르게 양성하지 않고 좋은 제품을 만들수 없다는 '도요타 정신'은 위기 속에 더 빛을 발했다.
도요타 창업가문 3세인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2009년 취임 직후 발로 뛰는 현장 경영을 통해 위기 진화에 나섰다. 뉴 캠리 등 출시를 앞둔 신차를 직접 뜯어보며 "기본에 충실한 최고의 품질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하나의 조립라인에서 여러 모델을 동시에 생산해 비용을 줄이는 도요타생산방식(TPS)도 재차 강조했다. 플랫폼 통합과 부품 공용화를 빠르게 추진해 원가 절감을 택했다.
또 생산시설의 지역별 다변화 노력 및 재고관리 강화 등을 통해 도요타의 생산성과 경쟁력은 오히려 더욱 강화됐다. 결국 도요타의 위기는 고객과의 신뢰를 높이고 뭉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기업문화를 다진 계기가 됐다.
학계에선 도요타의 강점으로 기본에 충실한 회사라는 점을 가장 먼저 꼽는다. 고속성장에 연연하지 않고 기술력과 경쟁력을 차근차근 쌓아온 점이 오늘날 도요타를 내구품질이 가장 뛰어난 자동차 회사로 만들어 놨다는 평가다.
유지수 국민대 총장(경영학과 교수)은 "도요타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으로 돌아가 기초를 다진 전략을 취한다" 면서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고만 하는 우리 자동차업계가 본받을 점"이라고 강조했다.
도요타가 일본 경쟁사보다 세계 각 지역마다 현지화에 앞서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기동 한일경상학회장(계명대 교수)은 "도요타는 닛산, 혼다 등 일본 경쟁 기업과 비교해 현지화 전략이 상당히 잘 돼 있다" 며 "미국에선 '도요타가 미국업체'라는 인식이 들 정도로 각 지역별 사업 전략에 강하다"고 말했다.
◆ 현대차 美 고급차 전략, 렉서스 성공에서 배워야
중저가 메이커였던 도요타가 제품 인지도를 높이고 품질 신뢰를 쌓게 된 데는 렉서스의 성공이 주효했다. 렉서스는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기관 JD파워의 브랜드·품질 평가에서 벤츠, BMW 등 독일 고급차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현대차가 2008년 제네시스를 선보여 북미 고급차 시장에 진출할 때도 '롤 모델'로 삼은 브랜드는 단연 렉서스였다.
1983년 도요다 에이지 선대 회장은 수석 임원들을 모아놓고 "세계 최고의 명차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후 6년간 1400명의 도요타 엔지니어와 2300명의 기술자들은 450개의 시제품을 개발한 끝에 'LS 400'을 탄생시켰다. 1989년 미국 진출 후 2년 만에 렉서스는 가장 많이 팔린 고급차가 됐다.
도요타 관계자는 "렉서스는 사소한 부품에 이르기까지 품질관리 시스템을 갖췄다" 며 "오랜 노력을 통해 소음진동(NVH)을 줄여 조용하고 안락한 고급차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렉서스는 권위 있는 유수 자동차 평가기관으로부터 꾸준히 높은 점수 받으며 브랜드 파워를 키웠다. 초기 코스트 리더십 전략으로 좋은 판매성적을 냈다. 이를 발판으로 가격을 인상해 수익성을 확보해 나갔다.
렉서스는 미국 시장에서 연간 20만 대 이상 팔린다. 지난해 현대차는 제네시스, 에쿠스, 제네시스 쿠페 3개 모델에서 3만8000대를 팔았다. 2008년 6000여대로 시작된 고급차 판매 성적표가 많이 상승했지만 아직은 도요타에 많이 뒤지는 게 사실이다.
도요타는 소형차와 경제적인 차에서 출발해 렉서스를 내놓기까지 약 25년 정도 걸렸다. 반면 현대차는 상대적으로 고급차 역사가 짧다. 현대차가 서두르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지수 국민대 총장은 "현대차는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급차 시장 진입을 서두르는 경향이 있고 조금 무리수가 있다" 며 "시간이 오래 걸려도 도요타와 같이 기초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브랜드 인지도·평판이 승부 가른다
현대차의 최대 라이벌은 의심의 여지없이 도요타다.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 간 자존심 대결이 숨어 있기도 하다. 도요타에게 현대차의 안방인 한국 시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수출지역이다. 한국도요타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면서 한국 판매량을 늘리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영국의 브랜드컨설팅그룹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12 브랜드 가치' 평가순위에서 현대차는 53위, 도요타는 10위에 각각 랭크됐다. 75년 역사의 도요타가 현대차보다 자동차 개발에 더 빨랐다는 점은 지금의 브랜드 인지도와 평판이 말해주고 있다.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50' 순위에 도요타는 전년 대비 4계단 상승한 29위에 올랐다. 국내 기업 중에선 삼성전자가 35위로 유일하게 포함됐다. 객관적인 지표에서 도요타가 현대차를 앞서 있는 상황이다.
현대·기아차는 연간 700만 대 이상 차를 팔아 글로벌 5위 자동차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초고속 성장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인지도 제고, 글로벌 SCM(공급망 관리) 최적화 등 해결 과제도 산적해 있다. 특히 브랜드 인지도는 시장규모는 물론 판매 단가에 큰 영향이 크다. 국내 자동차산업이 극복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대차의 향후 과제는 고급화 전략인데 명품 브랜드가 갖고 있는 '감성'과 '개성'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면서 "그러나 기존 고급차 브랜드와 차별화 된 방향으로 변화를 주지 않으면 대중차 이미지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김정훈/김소정 기자 lenn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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