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kyung.com/photo/201302/2013022148681_2013022172841.jpg)
첫 번째 시 ‘명함’은 일곱 행의 은유를 통해 세상을 그린다. 일곱 행이면 세상을 설명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는 듯, 각각의 행에서 끄집어낸 세상을 합치면서 전체 모습을 아우른다.
‘새들의 명함은 울음소리다/경계의 명함은 군인이다/길의 명함은 이정표다/돌의 명함은 침묵이다/꽃의 명함은 향기다/자본주의의 명함은 지폐다/명함의 명함은 존재의 외로움이다’
시인은 길을 걷는 노인, 열쇠를 조끼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열쇠공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길에 진액을 다 빼앗긴/저 바싹 마른 노인/(…)/어찌 보면 몸을 흔들며/자신의 몸속에 든 길을/길 위에 털어놓는 것 같다//자신이 걸어온 길인, 몸의 발자국/숨을 멈추고서야/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을거나//길은 유서/몸은 붓’(‘비정한 길’ 부분)
‘열쇠 자물쇠 주렁주렁 달린 조끼 벗고/겨울바람 피해 농협 현금자동지급기 코너에서/콜라에 빵을 먹고 있는 할아버지/할아버지는 수많은 열쇠를 깎아 무엇을 열었을까/(…)/내 몸뚱이는 무슨 열쇠일까/무엇을 열겠다고 세상을 떠돌아왔는가/혼자여서 쩔렁거리지도 못하는/(…)/상처로 깎은 열쇠가 되어/결국/이 악물고 호흡 끊으며/죽음만 비틀어 열고 말 존재인가’(‘열쇠왕’ 부분)
그는 다시 자신의 인생을 넘어 보편적인 삶으로 나아간다. 경마장 가는 사람들이나 잉크 번진 빨래 같은 일상의 풍경을 통해서다. 허공을 앞발로 힘차게 딛고 있는 경마장의 청동마상과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모든 비상의 첫발은 허공을 짚는 것이라고/희망에 중독된 사람들 우르르 몰려간다’(‘꽃 피는 경마장’ 중)고 쓴다.
잉크로 얼룩진 빨래를 보면서는 이렇게 노래한다. ‘펜 뚜껑 여니 잉크가 가득/빨래 따라 돌며/세탁기 속 움직임 속기했구나/(…)/얼룩과 때를 지우며/자신의 움직임을 빨래에 기록하는/세탁기는 지움을 글씨로 하는가/어쩜/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우고 있는 사람들도/지움을 글씨 삼는 것 아닐까/사랑과 비겁과 회한을 숨으로/쓰고 지우고 있는 것 아닐까//구름 흐른다 바람 분다/지구의 글씨는 흘림체다’(‘흘림체’ 부분)
방앗간, 농약상회, 도라지밭을 배경으로 강화도의 소박한 삶도 풀어놓는다.
‘길을 가다가 도라지/밭에 올라가보았지요/꽃 들여다보고 있으면/주인도 혼내지 못할 것 같았고/혼내도 혼나지 않을 것 같았지요//고향집 장독대 뒤에 피어 있던/도라지꽃도 까마득 진 줄 모르고 피어났지요/(…)/옛날에 장독대에서 각진 꽃봉오리 터뜨리던/폭폭 소리 사방에서 들려오는 거 있지요’(‘도라지 밭에서’ 부분)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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