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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칼럼] "거 참, 국민연금을 잘 모르시나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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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저축 아니란 것 국민들 몰라…세금 미리 걷어 놓은 게 現적립금
의결권 장난도 기만도 이제 그만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20만원짜리 기초연금은 결국 세금에서 주는 것으로 정리되는 모양새다. “(국민연금 등) 다른 곳에서 빼서 주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 당선인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국민연금에서 가져다 쓰자던 인수위원은 졸지에 꿀먹은 벙어리다. 보편적 복지는 보편적 세금으로 주어야 한다는 면에서 당선인 말이 맞다. 그러나 시행 첫해만도 13조8000억원이 든다. 추경이라도 편성해야 할 판이다. ‘당선자가 약속하면 인수위는 책임진다’는 것이 인수위에 내려진 특명이다. 토론은 인수위, 결론은 당선인 몫이다. 거 참, 고약하게 돌아가고 있다.

박 당선인의 말을 듣고 있자면 그는 아직 국민연금의 본질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당선인만도 아니다. 기초연금에 관한 언론보도를 보면 대부분이 국민연금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정도다. 국민연금은 연금 가입자들이 자신의 노후를 위해 저축하거나 적립해둔 가입자의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미안하지만 아니다. 국민연금은 지금의 노후세대를 봉양하기 위한 사회적 세금으로 걷고 있는 돈이지 가입자의 노후를 위해 적립하는 돈이 아니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은 이자를 붙여 돌려주는 장기저축이 아니다. 국회보건복지위원회 오제세 위원장이 말하듯이 “국민연금은 젊은 세대에 대한 기만”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세금 아닌 연금에서 기초연금을 떼어준들 다를 것도 없다.

연금 적립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 마치 가입자의 저축액이 늘어나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384조원으로 불어나 있고 2040년이면 1500조원까지 불어난다는 이 기금은 대체 누구의 무슨 돈인가? 여기엔 약간의 술수가 있다. 이 문제는 경제민주화의 주인공 김종인 씨가 잘 안다. 김종인 씨는 국민연금 제도를 도입한 당사자다. 그는 나중의 한 토론회에서 연금 고갈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한 적이 있다. “거 참,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그때는 세금을 걷어서 주는 거예요! 원래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목소리를 높인 김종인 씨의 이 말은 진실이다. 지금의 세대가 세금을 걷어 지금의 은퇴세대에 주는 사회봉양이 국민연금이다. 지금 세금을 걷을 바에 조금 더 걷어놓자는 것이 바로 적립금이다. 장래의 세금 부담을 조금 낮춰놓은 것일 뿐 본질은 달라질 것이 없다.

지금의 20대가 꼬박꼬박 연금을 부어 나중에 은퇴할 때엔 어떻게 되냐고? 적립금은 당연히 고갈되고 없다. 김종인 씨가 한 말은 바로 이를 말한 것이다. 줄 돈이 없는 그때야말로 세금을 걷어서 줘야 한다. 그런데 세금을 낼 사람이 적다면, 아니 없다면? 당연히 연금도 없다. 내가 평생 모아놓은 돈은 어디로? 이미 구세대가 전부 타먹고 사라졌다. 이게 국민연금의 기만적 진실이다.

자 이제 적립금이 쌓여 있으니 장난을 좀 쳐볼 때다. 공짜 돈은 누군가의 쌈짓돈이다. 어제 국민연금은 9.39%의 지분으로 동아제약의 회사분할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소위 적극적 의결권 행사다. 그러나 다른 주주들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공단 측은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돈과 주식을 쌓아놓고 있으니 그 돈으로 위세를 부리고 싶은 것이다. 공단은 몇 년 전에는 현대차 정몽구 회장의 이사 선임안에도 반대표를 던졌다. 대리인들의 제멋대로 횡포다. 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심각한 ‘주인-대리인 문제’를 만들어 내거나, 권력의 내밀한 앞잡이가 되거나, 부패의 온상이 되거나, 아니면 이 모든 것의 합이 될 뿐이다. 잘해야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고, 잘못하면 증권시장을 쥐고 흔드는 시한부 괴물이다. 굳이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그때마다 가입자 총회를 열어야 마땅하다.

세금과 다를 바 없는 국민의 돈으로 기업가와 자본가들을 혼내주자는 법안이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라는 이름으로 국회에 제출돼 있다. 연금 적립금이 세금을 미리 떼어놓은 것과 다를 바 없는 돈이고, 곧 사라질 돈이며, 나의 저축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들이 알게 되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국민연금은 몇 차례에 걸쳐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받는’ 소위 개혁을 해왔다. 나중에 한푼도 안 받게 되는 것도 개혁이라고 부를 것인가. 이제 진실에 직면할 시간이 왔다.

오제세 위원장이 말하는 기만극은 이제 그만두자고!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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