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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고향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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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되뇌어도 뭉클해지는 단어…고향바다 같은 그 이름 '어머니'

임창섭 <하나대투증권 사장 csrim@hanafn.com>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물 눈에 보이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고향은 추억과 그리움으로 가득 찬, 마르지 않는 샘. 그곳을 떠올리면 봄 안개처럼 포근해지는 건 순진무구했던 어릴 적 추억과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 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리라.

고향은 늘 푸른 바다가 보였다. 어릴 적 뛰놀던 동네 공터에서도, 학교 교정에서도 바다는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다는 답답한 가슴을 시원스레 뚫어주었다.

귀향한 세계적 조각가 문신(文信)님의 머릿속에도 늘 바다가 있었을 것이다. 오랜 해외생활을 접고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에 자신의 예술공간을 구상했던 것도 어린 시절의 고향 바다를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몸은 떠나 있었지만 마음속엔 언제나 푸른 바다가 넘실거렸을 것이다.

직장 생활이 힘들고 고달플 땐 나도 그 바다가 그리웠다. 해풍 속 비릿한 바다내음이 그리웠다. 한강이 있어 다행이긴 했지만 고향바다만 할까? 하지만 고향바다도 너무 많이 변했다. ‘문신(文信)조각공원’이 위치한 언덕에서 바라본 바다는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 한쪽을 가로막고 선 괴물 같은 커다란 건물. 고향 언덕에 일생 동안 쌓아왔던 작품 세계를 헌정코자 했던 거장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선창가에 늘어섰던 술집도 방파제 끝 등대도 모두 사라지고, 매립지 위엔 새 건물로 단장한 횟집이 즐비하지만 왠지 낯설기만 하다. 여름이면 어머니 몰래 걸어서 다녀왔던 해수욕장도 무슨 단지 조성한다고 깡그리 메워버렸다. 어릴 적 여름 해수욕장은 이제 먼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메워진 바다만큼 추억 속 그리움만 커졌다.

고향이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무엇일까? 고향친구, 고향바다, 고향집…. 하지만 어머니만큼 고향과 잘 어울리는 단어는 없을 게다. 어머니와 고향은 늘 함께 있다. 언제 되뇌어도 가슴 뭉클해지는 단어 ‘어머니’. 어머니와 고향은 내게 아무리 갚아도 줄어들지 않는 빚을 지운 듯하다. 내 삶의 의미있는 것들은 모두 어머니와 고향이 준 것이기 때문이다.

고향에 가면 잊지 않고 들리는 곳, 어시장이 있다. 그곳엔 예전과 다름없이 일년 내내 질퍽거리는 바닥, 왁지지껄한 소리, 몇 십년은 된 듯 싶은 아줌마들의 생선 다듬는 능숙한 솜씨, 고무대야에 담겨 있는 활발발지(活地·생명이 요동치듯 싱싱하게 살아 팔딱이는) 물고기들, 그 찬란한 풍경과 마주치면 새삼 고향에 왔다는 걸 실감한다. 조만간 어머님 계신 고향에 다녀와야겠다.

임창섭 <하나대투증권 사장 csrim@hana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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