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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열심히 하니 거래처 늘고, 급여 올랐죠"…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이후장애인직업재활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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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잡앤조이=이진이 기자/최은희 대학생 기자] “어르신, 잘 지내셨어요.” 인천 동구에 공장 단지, 한 남자의 아침은 포대에 가득 실린 세탁물을 승합차에 실으며 시작된다. 17km 남짓의 거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인천 부평의 아파트. 익숙하게 벨을 누르고 기다린다. 집에서 나온 노인에게 세탁물과 함께 살갑게 인사를 건넨 그는 김상래 이후장애인직업재활시설 국장이다. 



대형 세탁물을 혼자 나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와 함께 지난 11일, 동행을 시작했다. 김 국장이 이후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한 지는 올해로 11년째다. 이후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취업이 어려운 중증 발달장애인들에게 직업교육 및 근로 기회를 제공하는 직업 재활시설로, 세탁업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처음부터 그의 진로가 직업 재활 쪽이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과와 무관했던 그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사람’ 이었다. “지인 권유로 잠시 장애인들과 일을 했어요. 처음엔 몇 개월 하다가 그만두려고 했는데, 일하다 보니 너무 즐겁더라고요. 대부분 힘든 일을 기피하기 마련인데, 이 친구들은 그런 게 없어요. 남한테 자기 일을 미루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하고 본인 힘으로 해보려고 하고…그런 모습들이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충격이었어요.”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김상래 국장은 남은 인생을 장애인들과 함께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사회복지 및 직업 재활학과에 재입학해 관련 교육을 받는 등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중증 장애인들에게 장기적으로 경쟁력 있는 직종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는 “장애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울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다”며 “그들이 단기 아르바이트직보다 지속적인 일자리를 갖길 원했다”라고 말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일반인들이 직업으로 기피하는 세탁업을 시작하게 됐다.

공동체 내 맥가이버 '김 국장'···장애인 자립 위해 기본기 가르쳐

“국장님, 수레바퀴가 이상해요.” 수거를 마치고 김 국장이 시설에 돌아오자, 장애인 친구들이 하나둘 주위에 모여들었다. 이곳은 실무진 5명과 장애인 근로자 25명이 함께 운영하는 공동체다. 이곳에서 김 국장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그는 시설의 사소한 물건부터 대형 세탁 설비 관리까지 다양한 업무를 도맡고 있다. 



이곳 재활 근무자들은 1·2급 중증장애로 운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연계된 자활센터 근로자들과 함께 김 국장이 직접 수거를 다닌다. 매주 호텔·관공서·공항 등에서 수거된 200포대의 빨랫감은 섞이지 않게 종류별로 번호표가 붙여진다. 이어 본격적인 빨래가 시작된다. 대형 장비들을 통해 세탁, 탈수, 건조, 다리미질 등을 거친 세탁물들은 근로자들이 서로 손발을 맞춰 차곡차곡 갠다. 이 모든 과정에는 땀 흘려 열심히 일한 발달 장애인 근로자들의 손길이 닿아있다.

“중증 장애인들은, 일을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을 수 있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그 친구들도 충분히 배우고 익히면 대부분 잘해나가요.

이런 면에서 이후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장애인에게 직업훈련 및 근로 기회를 제공하는 즐거운 일터다. 여기서 장애인들은 일하고, 정당하게 급여를 받는다. 5명의 실무자는 시설의 수익금과는 무관하게 정부로부터 책정된 급여를 받는다. 따라서 세탁업으로 창출되는 모든 수익금은 시설운영비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장애인 근로자의 인건비로 쓰인다. 수익금이 증가하면 시설에서 더 많은 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다.

“수익이 높아야 더 많은 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고, 더 많은 급여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위 발품을 열심히 팔아 관공서·기업·단체와 계약을 성사시켜야만 하죠. 최근에는 인천공항과도 거래를 시작했어요.”

“우리 공동체 급여 수준은 인천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듭니다. 평균 급여는 100만원대 전후로 타 시설 임금보다 약 30만~40만원 많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근로자들이 워낙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현재 25명인 정원을 30명으로 증원해달라고 기관에 요청한 상태입니다.”



일반 기업에 장애인 취업이 관건···

매년 1~2명이라도 취업 시키는 게 꿈

이런 노력 덕분에 이후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자발적 사회공헌과 주위의 지원이 있었다. 김 국장과 실무진들은 시설 설립과 동시에 노숙인쉼터, 청소년 보호시설, 보육원 등을 대상으로 무료세탁서비스를 계속해왔다. 

때마침 취약계층을 돕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던 인천시가 찾아가는 공감세탁서비스를 제안했다. 두 기관이 합작해 계획한 이 사업은 어려운 기초생활수급 노인, 중증 장애인, 쪽방 거주민과 같은 취약계층에 세탁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인천시가 지급함으로써 이후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복지실천과 고용창출이라는 일거양득을 거두고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김 국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더 많은 중증 장애인 일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최근 김 국장은 정부의 정책 가운데 중증 장애인 근로자들을 위한 근로지원인 제도를 고려하고 있다. 이 정책은 일반 기업체가 1·2급 중증 장애인들을 고용하는 경우, 고용 공단에서 비장애인 근로 지원 인력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즉, 일반 기업체는 한 명의 급여만 지급하면서, 장애인을 포함한 두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 

일반 기업체들이 중증 장애인 고용에 부담감을 느끼는 현실을 돌파하는 것이 가장 큰 관문이라는 김 국장은 계속해서 기업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렇게 매년 한두 명씩이라도 일반 기업체에 장애인들이 취업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장애인들이 이 안에서만 안주하지 않고, 더 넓은 세상에서 일하는 그런 날을 꿈꿉니다.” 하루 업무를 함께하고 끝인사를 나누며 김상래 국장이 한 마지막 말이다. 오늘도 이후세탁 이라고 커다랗게 써 붙인 승합차를 몰며 그는 이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ziny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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