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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가까운 사람에게···제 이야기에요” 살인·강도·방화 줄어들지만 성폭력 범죄 늘어나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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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잡앤조이=이진호 기자/주연우 대학생 기자] n번방 사건으로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강력 처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이 목소리 뒤편으로 수많은 공모자는 가려졌다. 과연 가해자는 ‘악마’ 혹은 ‘두 얼굴의 범죄자’일까. 평범한 대학생 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은 가명 사용을 요청했다. 피해자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거부였다.



#작년 여름, 최 씨는 남자친구 K와 K의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갔다. 여행날 밤 K의 친구였던 가해자가 나의 엉덩이를 3차례 정도 주물렀다. 처음에는 실수인 줄 알았다. 전날 맞춰놨던 알람이 조용하던 방의 적막을 깼다. 덕분에 잠에서 깬 척 화장실로 달려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남자친구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피해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고,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몰려왔다. 그때 남자친구가 먼저 눈치를 챘다. OO이가 건드렸냐고 물어봤다. 가해자는 K가 지목한 사람이 아니었다. K는 배신감이 든다고 했다. 믿었던 친구인데 그럴 줄 몰랐다고 나에게 사과했다. 결국 지금은 그냥 잘 지낸다. 그때 일이 실수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최은빈(가명 24) 씨

#이 씨는 지난해 11월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고속버스터미널 역에서 환승을 기다리는데 누군가의 손이 엉덩이에 느껴졌다. 해가져 어두운 시간대도 아니었다. 몸에 붙거나 길이가 짧은 옷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이 씨는 온몸이 언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범죄자의 얼굴도 보지 못해 신고도 소용없다고 느꼈다. 스스로 별일 아니라고 다독이게 되더라. 지하철 성추행 같은 경험은 신고 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이야기를 하니 어머니도, 친구들도 다들 한 번씩 그런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 후 지하철을 한동안 타지 못했다. -이지은(가명 25) 씨

#한 씨는 출근 시간에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는 중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저씨와 어깨를 부딪쳤다. 아저씨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안아줘?” 순간 수치심으로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4년 동안 통학하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성희롱을 당했다. 이제는 정확한 날짜가 기억나지 않는다. -한빛나(가명 24) 씨

성폭력 86%, '아는 사람'이 가해자

성폭력 피해자는 멀리 있지 않다. TV 뉴스나 신문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가해자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의 친구, 동료, 가족이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018년 성폭력 피해에 대한 보고서에서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이 1029건(86.5%)으로 가장 많다고 발표했다. 어린이와 유아일 때 친족에 의한 피해가 각각 47건(56.6%), 13건(61.9%)으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국 형사 정책 연구원의 ‘성폭력범죄의 양형 분석 및 재범방지를 위한 성폭력범죄자 사후관리방안’에 따르면 범죄자와 피해자 관계는 2004년 전체 범죄 기준 친족과 친구가 1.3%, 지인이 3.6%를 차지한 것에 비해, 성폭력범죄는 각각 2.1%, 3.7%, 10.2%로 다른 범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여성단체 활동가 이재정 씨는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을 통해 성폭력이 가까운 사람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 씨는 “우리 사회는 가해자를 괴물로 만듦으로써 이 괴물만 처단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환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 범죄를 특정 가해자만의 문제로 축소하는 태도는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대검찰청의 ‘2019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성폭력 범죄의 발생 건수는 3만2104건으로 인구 10만 명당 61.9건의 범죄가 발생했다. 성폭력 범죄의 발생비율은 지난 10년 동안 77.4% 증가했다. 강력범죄(흉악)중 살인, 강동, 방화범죄의 발생비율은 지난 10년 동안 감소추세를 보이지만 성폭력 범죄의 발생비율은 1.8배나 증가했다. 강력범죄(흉악) 발생 건수 중 성폭력 범죄의 비중은 2009년 64.3%에서 2018년 91.0%로 26.7%p 확대됐다.

'안돼요' 구호부터 배우는 잘못된 성교육 문화

꾸준히 감소하는 살인, 강도, 방화범죄와 달리 성폭력 범죄는 왜 증가할까. 이 씨는 “성폭력은 성차별적 문화를 기반으로 꾸준히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근대 이후 여성들은 이성적인 사고가 어려운 존재로 여겨졌다. 여성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여겨온 문화가 생기면서 여성들은 폭력을 저질러도 되는 존재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서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실장은 남성들의 잘못된 성문화와 사회적으로 행해지는 성폭력 예방 교육을 꼬집었다. 김 실장은 “한국의 성교육은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예방해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강의를 나가서 청소년들에게 ‘성교육에서 기억나는 걸 이야기해봐’ 하면 다 ‘안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를 구호처럼 배운다”며 “다른 범죄와 달리 성폭력에서는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하지 않도록 수단을 취해야 하는 것처럼 교육받는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사회가 경청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만 성폭력 범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성폭력 범죄의 문화적 인식 개선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여성을 잠재적 피해자로 설정하던 관습에서 벗어나,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성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자기방어 훈련을 공교육 수업 시간 안으로 들여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jinho23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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