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슈] ‘중림동 뒷골목’은 어떻게 슬럼화를 벗어났나[캠퍼스 잡앤조이=한종욱 인턴기자] 흔히들 ‘슬럼가’라고 불리는 거리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미국 흑인 슬럼 지역인 할렘이 연상된다. 여러 미디어를 통해 슬럼가는 대체로 어둡고, 낙후돼있으며 범죄율이 높은 길거리이자 경찰들도 접근하기 힘든 곳이다. 하지만 슬럼은 단순히 어둡고 범죄율이 높다는 이미지로 형성된 단어가 아닌, 도시의 노쇠화를 표현하는 단어다. 슬럼은 지역 병리 현상으로 흔히 빈민이 많은 지구나 주택환경이 나쁜 지구를 말한다.△중림동 뒷골목. (사진제공=한경DB)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중림동 뒷골목은 한때 슬럼가였다. 이곳은 재개발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개발이 멈춘 곳이었다. 골목 한 켠에 자리해 있는 성요셉 아파트의 경우 현재 임대업을 통해 세를 내곤 하지만 종교 사유지로 분류돼 재개발이 불가한 곳이다. 재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탓인지 7, 80년대 서울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성요셉 아파트에 사는 거주민 이 씨는 “과거 교통여건이 좋지 않을 때 이 앞에 사람들이 자주 들르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다”며 “비록 건물은 오래됐지만 (버스정류장 덕에) 인구 유입이 많이 돼 장사는 잘 되는 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씨는 교통이 발달되고 굳이 이 길을 통하지 않아도 되자 길목의 힘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드문 급경사의 언덕과 오래된 아파트, 인적이 드문 길거리는 이 짧은 지역을 슬럼화시키기 충분한 요건이었다. 서울시 행복동 낙원구에는 행복이 찾아올까···자영업자들이 쏘아 올린 작은 공중림동 뒷골목은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조세희 작가의 소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배경인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지명이다. 영수네 다섯 가족이 살았던 이 골목은 지금 현재 슬럼화를 벗어나고 있다. 중림동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의 바람은 현재진행형이다. 가장 큰 변화의 바람은 다양한 상가들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세탁소, 커피숍, 미용실, 네일집, LP전시실 등 다양한 연령층을 포용할 수 있는 상가가 형성되고 있다. △중림동 뒷골목에 자리잡은 커피 방앗간은 근처 직장인들이 자주 들르는 카페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중림동 뒷골목에 상가들이 들어선 것일까. 이곳에 들어선 상인들은 하나같이 ‘저렴한 임대료’를 골목의 장점으로 꼽았다. 주재현 커피방앗간 사장은 “2015년도에 자주 이곳에 와서 상권을 보곤 했었다”며 “그 당시 이 길을 지나가는 젊은층이 한 시간에 2-3명 정도였다”고 말했다. 당시 설명에 따르면, 새로 들어온 커피방앗간 카페에 원두 향을 맡고 주위 회사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미용실 글래드도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다. 글래드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 내외는 당시 커피방앗간에 유입되는 고객들이 많아지자 입주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점심시간 때 직장인들로 붐비는 충정로김밥집 또한 낮은 임대료가 상권에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중림동 뒷골목에 신축된 '중림 창고'.
낮은 임대료로 상인들이 유입됐다면 '서울 7017 프로젝트'도 골목 이미지 개선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골목 상인들은 “서울 7017 프로젝트가 시작돼고 서울 고가를 드러냄과 동시에 주변 도로 정비사업을 했다”며 “도로 정비사업을 통해 깨끗한 길거리가 조성된 것이 상권이 살아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았다. 또 새로이 증축된 ‘중림 창고’도 사회적 협동조합에 상가 입점을 위탁한 상태다. 올 하반기 서점, 전시공간, 세미나를 열 수 있는 공간이 입주할 예정이다.골목 특유의 분위기도 요인이었다. 창고를 개조해 작업실로 사용하는 정호정 씨는 “골목 특유의 느낌이 좋아서 들어왔다”며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문 방앗간이 있어 뉴트로 감성을 느낄수 있다”고 말했다. 또 주재현 커피방앗간 사장은 “골목 자체가 서울에서 보기 힘든 곳이고 고유의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중림동 골목 상인들 “임대로 오를까 걱정”···‘젠트리피케이션’ 우려도 있어아직 골목의 성장세가 큰 폭으로 오른 것은 아니지만 일부 주민들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일말의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서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이다. 서울 지역을 예로 들면 경리단길과 익선동이 대표적이다. 이 지역은 과거 낙후지역으로, 임대료가 낮아 젊은 예술인과 창업자들이 붐벼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었다. 이에 주변 임대료가 급상승해 원주민들이 떠나면서 초기부터 운영됐던 고유의 소상공인들이 대거 떠났다. 하순애 충정로김밥 사장은 “현재 비어있는 상가들은 임대료를 비싸게 내놓기 때문에 안 들어온다”며 “익선동 망원동처럼 임대료를 올리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재현 커피방앗간 사장은 “적당한 붐빔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지나치게 활성화가 된다면 그에 따른 그림자도 클 것이다”고 말했다. △소상인들이 대거 떠난 이태원 경리단길. (사진제공=한경DB)
중림동 상인들은 역설적이게도 상권의 부흥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동반한다는 반응을 내놨다. 현재 서울시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대책을 세우고 있다. 최근 성동구에서는 공공안심상가를 조성해 소상공인들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최대 10년간 입주를 보장하고 있는 등 공공기관에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는 서울시가 진행하고 있는 도시 재생산업과 병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한다는 정 씨는 “상권이 부흥돼서 좋은 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만일 임대료가 상승한다면 기존의 가게들은 떠날 것이다. 지금은 우려 수준에 그칠 뿐이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반복되는 것 같아 아쉽다. 정부가 젠트리피케이션의 방지를 염두해두는 도시재생 사업 정책을 실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jwk108@hankyung.com< 저작권자(c) 캠퍼스 잡앤조이,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