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Q열전] △ 사진 = 이승재 기자
[캠퍼스 잡앤조이=박해나 기자] 이름부터 생소한 ‘스포큰 워드(spoken word)’는 국내에서는 조금 낯선 예술 장르다. ‘말로 쓰는 글’이라는 의미로 굳이 비교하자면 낭독이나 연설과 비슷하다. 구어에 연극적인 요소를 더하기도 하고, 음악을 덧입히기도 한다. 박세준(30) 씨는 한국에 ‘스포큰 워드’를 전파하겠노라 마음먹고 미국에서 날아왔다. 박세준 씨는 미국 유학 시절 스포큰 워드에 푹 빠졌다. 스포큰 워드는 미국에서는 이미 대중적으로 알려진 예술 장르. 대중음악시상식 그래미워어즈에서 ‘스포큰 워드 앨범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오픈마이크 행사에 참여해 자신이 쓴 시를 읽는 것이 보편화됐다. 특히 스포큰 워드를 발표하는 방식 중 하나인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이 인기다. 직접 쓴 시를 래핑(rapping)으로 관객에게 선보이는 형식인데, 시 낭송과 랩의 중간 어디쯤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까. 박 씨는 누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국내에 스포큰 워드, 포에트리 슬램을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중이다. △ 사진 = 이승재 기자 아이비리그 유학생, 스포큰 워드에 빠져 인생 리셋
박 씨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인 코넬대를 졸업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려던 그는 ‘힙합’,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스포큰 워드’에 푹 빠지면서 공부도 때려치고, 인생 계획을 리셋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말이 통하질 않아 성격이 소심해지던 때에 우연히 힙합 음악을 접하게 됐죠. ‘돈이 좋아요’, ‘여자가 좋아요’라며 당당히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가사에 놀랐어요. 자기 표현에 소극적이던 제게는 그 모습이 굉장히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요. 그때부터 유명 랩퍼들의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고, 영어 연습도 할 겸 랩 가사도 혼자 끼적이기 시작했죠.”힙합을 좋아하는 조용한 아시아 학생이던 박 씨, 그를 달라지게 만든 것은 영어선생님의 작은 제안이었다. 보통 미국에서는 영어 시간에 에세이를 작성해 제출하도록 하고 있는데, 영어 선생님은 따로 박 씨를 불러 ‘에세이 대신 스포큰 워드를 제출하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시낭송을 랩처럼 하는 스포큰 워드에 빠져있었는데, 소문을 들은 영어선생님이 관심을 보였던 것. 박 씨는 자신이 쓴 시를 랩 형식으로 낭독한 스포큰 워드를 녹음해 전달했고, 선생님은 수업 때마다 친구들에게 그의 작품을 들려주었다. 조용한 아시아 학생에게 관심은 집중됐고, 음악을 좋아하고 스포큰 워드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그에게 먼저 다가오기 시작했다. 비슷한 관심사의 친구도 생기고 취미로 프로듀싱과 랩 가사 쓰기 등을 즐기며 학창 시절을 보낸 그에게 고민 따위는 없었다. 진로에 대해서도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대학 입학도 큰 기대나 계획 없이 결정했다. ‘의사가 되면 나중에 먹고 살기 편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의대 진학을 계획했고, 관련 전공을 선택했다. 하지만 코넬대는 아이비리그 대학 중에서도 숙제, 시험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고등학교 때보다 오히려 공부할 양은 훨씬 많아졌고, 전공 공부에 치여 취미로 하던 음악이나 가사 쓰기 등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공부에 지쳐있던 중 우연히 학교에서 진행하는 스포큰 워드 이벤트를 알게 돼 참여하게 됐어요.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스포큰 워드를 하게 된 거라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요.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는데 ‘이거다’ 싶더라고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소중한 무언가를 찾은 느낌이었죠.”△ 사진 = 이승재 기자 퇴사한 YG 미련 없어, 스포큰 워드로 건물주 되는 것이 나의 꿈
박 씨는 이후 대학 대표로 스포큰 워드 대회에도 참가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취미로만 즐기려고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음악에 대한 갈증은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그는 외국인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인턴십 기회를 잡지 못하게 되면서 유학, 대학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게 됐다. 박 씨는 ‘원하지 않는 공부를 해도 미래가 안전하지 않다면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살자’며 의대 진학을 포기했다. 그리고는 다른 전공보다 빨리 졸업할 수 있는 경제학과로 전과를 했고, 졸업 후에는 LA의 한 인디레이블에 입사해 아티스트 매니저로 1년 간 근무했다. 비자 만료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치즈 앤 소주’라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한국에 스포큰 워드를 알리자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대단히 화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 같아 기쁘던 그때, 생각지 못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바로 국내 최고의 기획사로 꼽히는 ‘YG 엔터테인먼트’였다. “작은 인디 레이블에서 1년 일해 본 경험밖에 없던 터라 대형 기획사에서 일한다는 것이 고민이 되었죠. 스포큰 워드를 한다고 해놓고는 아이돌 기획사에 입사하는 것에서도 성향 차이가 있었고요.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입사를 결정했어요. 그렇게 2년 정도 소셜미디어 마케팅 업무를 진행하고, 지난 2016년 퇴사를 했죠. 배울 수 있는 건 많았지만 조금씩 성향이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고, 10년, 20년 후의 제 미래가 그곳에서는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다시 또 백수가 된 그는 ‘치즈 앤 소주’ 블로그로 회귀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등에 없고 성공하리라 결심했다. 더욱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며 스포큰 워드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누구나 무대에서 스포큰 워드를 공연할 수 있는 ‘오픈마이크’나 스포큰 워드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한 ‘워크샵’ 등이 대표적이다. △ 오픈마이크 행사에는 일반 관객도 자유롭게 참여 가능하다.(사진=박세준 제공)
오픈마이크의 경우 4개월에 한 번씩 연남동의 카페를 대관해 관객을 모아 진행한다. 박 씨가 준비한 스포큰 워드를 선보이고, 원하는 관객이 있으면 무대에서 직접 공연을 할 수 있다. 워크샵에서는 좀 더 자연스럽게 스포큰 워드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글로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해, 그것을 랩이나 시 형식으로 수정하고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아직은 한국 사회에서 스포큰 워드는 생소하죠. 처음에 한국에 와서 스포큰 워드를 얘기했을 때는 정말 아무도 몰랐어요. 하지만 요즘은 조금씩 아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죠. 제 꿈은 스포큰 워드로 성공해 건물주가 되는 거예요. 지금은 번역 알바로 먹고 살지만 언젠가는 투자도 받고 인지도도 높여 2층짜리 건물도 살 수 있겠죠? 지하는 공연장, 1층은 작은 스테이지가 있는 펍, 2층은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옥탑방에는 제가 살고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네요.” phn0905@hankyung.com < 저작권자(c) 캠퍼스 잡앤조이,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