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수대 고문단 최전선 투입…야전 전술·기동 직접 지휘"
"첨단 미사일·자폭 드론 제공하고 실전 운용 훈련까지"
"통신 감청·위성 정보 등 정보 지원도"…이란, 美 동맹국 압박할 지렛대 확보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가 단 48시간 만에 예멘 서부 홍해 연안의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하며 중동 정세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친정부군의 사분오열을 틈탄 기습 작전이었으나, 사실상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작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혁명수비대의 전례 없는 수준의 직접적인 개입이 확인됐다고 AP 통신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후티 고위 관계자, 역내 관리들, 예멘군 최고위급 지휘관, 예멘 대통령 지도위원회 위원 등 10명을 인터뷰해 재구성한 후티의 홍해 연안 장악 작전을 뜯어보면 이란은 후티 반군에게 단순한 무기 지원을 넘어 최전선 전술 지휘까지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런 이란의 행보는 예멘 내전을 넘어 미국과 아랍 동맹국들을 겨냥한 이란의 역내 패권 전략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고 AP 통신은 분석했다.
모카 항구를 비롯한 홍해 연안 일대가 후티의 수중에 떨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란의 역할 변화다.
과거 후티 배후에서 주로 전략 기획을 담당하며 현장과 거리를 뒀던 이란 혁명수비대 고문단은 이번 공세에서 사실상 야전 사령관 역할을 수행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전술 기동 계획을 수립하고 최전선 지휘관들과 직접 소통하는 등 작전의 모든 단계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한다.

이란은 이런 상황을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란은 이미 지난해부터 후티에 고도화된 미사일, 자폭 드론, 무인 공격정 운용 훈련과 병참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왔다.
특히 지난 7월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습을 뚫고 예멘 수도 사나 공항에 착륙한 이란 항공기에는 혁명수비대 고문단이 다수 탑승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예멘에 주둔 중이던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고문단 등과 합류해 이번 공세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또 통신망 분석과 위성 정보 판독 역량까지 제공하며 후티의 눈과 귀가 되어 줬다고 한다. 2014년 예멘 내전 발발 이후 이란이 보여준 가장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다.
이란의 전폭적인 정보 지원을 등에 업은 후티는 예멘 친정부군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통신망 해킹을 통해 친정부군의 핵심 병력인 '국민저항군'(National Resistance)의 동선을 낱낱이 들여다보며 교란 작전을 펼친 것이다.
반면, 홍해 연안 방어를 책임지던 친정부 동맹군은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3만 명 규모의 국민저항군이 후티의 미사일과 드론 맹폭에 시달릴 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거인 여단'(Giants Brigade)은 사전 조율 없이 독단적으로 움직였다.
과거 반(反)후티 연합의 주축이었던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간의 세력 다툼이 낳은 두 부대의 오랜 앙숙 관계가 결정적 위기의 순간에 최악의 자충수로 작용한 것이다.
"통합된 지휘 체계의 부재는 후티에 천금 같은 기회였다"는 예멘군 최고위 관계자의 탄식은 친정부군의 뼈아픈 현주소를 보여준다.
지휘부와의 통신이 두절되고 오합지졸로 전락한 병력은 패닉에 빠져 무질서하게 퇴각했고, 국민저항군 지휘관인 타리크 살레 중장마저 사우디로 도피했다.
결국 후티는 지난 10일 아무런 저항 없이 텅 빈 모카항에 무혈입성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영토 변화를 넘어 중동의 지정학적 역학 관계에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가장 큰 충격파는 사우디의 침묵이다. 후티가 파죽지세로 모카를 향해 진격하는 동안, 예멘 정부군이 그토록 기다렸던 사우디의 공습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미국이 확전을 우려해 사우디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주저하는 상황과 맞물려, 역내 친미 동맹국들의 무력감으로 귀결됐다.
후티는 철수하는 정부군이 남기고 간 막대한 양의 사우디 및 UAE제 장갑차와 로켓, 탄약을 전리품으로 챙기며 무기고를 더욱 든든하게 채웠다.
전략 도서를 포함해 홍해 연안을 장악한 후티는 이제 사우디의 핵심 원유 수송로를 언제든 틀어막을 수 있는 목줄을 쥐게 됐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을 받았던 이란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안감을 무기 삼아 미국과 역내 동맹국을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지렛대를 손에 넣게 됐다.
meol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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